진주성-짚은 골 산사에서
진주성-짚은 골 산사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1.24 18:3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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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짚은 골 산사에서


엊그제가 24절기 중 스무 번째인 소설이었다. 이맘때면 살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린다는 겨울의 초입이다. 은근슬쩍 짓궂게 달라붙는 온갖 번민들로 고요함이 절실할 때면 이따금 찾는 작은 절집이 불현듯이 생각나서 눈이라도 내리면 못 가는 곳이라서 서둘러 다시 찾았다. 골짜기가 깊어서 ‘짚은 골’이라는 첩첩산중의 작은 산사를 처음 찾은 것은 ‘짚은 골’ 이라는 사투리의 정감이 한 몫을 했거니와 얼마나 깊어서 짚은 골이라 했나가 궁금해서 오래전 이맘때에 찾았던 ‘연화사’는 절집이라기보다는 움막이었다.

주먹만 한 주춧돌위에 기둥 넷을 세워서 지붕을 얹은 원두막만 한 움막에 바람벽을 황토로 바르고 기어들고 기어나는 작은 출입문이 건물구조의 전부인 법당이었다. 정면에는 바위가 거북모양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어 출입문도 측면에 달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거북이의 등이 벽을 뚫고 방바닥에 솟아있어 칠성봉에서 나온 거북이 작은 절집을 등에 업고 연화봉을 바라보는 형국인데 불단 앞에서 두 사람이 절을 하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아래채인 요사도 네댓이 앉으면 무릎이 맞닿는 작은 단칸방이 전부였다.

텃밭에서 기른 무와 배추로 일찌감치 김장을 하여 장독과 나란하게 김장독을 반들반들하게 가시었고 서리 맞은 끝물 고추를 채반에 널어놓고 시래기도 엮어서 처마 밑에 가지런하게 달았는데 법당의 바깥벽에 곶감을 깎아서 조랑조랑 매달아 놓은 것이 동화책 속의 그림 같았다. 얼굴이 해맑은 50대 초반이나 될락 말락 한 젊은 스님의 야왼 손끝으로 따라주는 녹차향기만 방안 가득했지 있는 것이라곤 횃대에 걸린 가사장삼이 방안장식의 전부였다. 온갖 것이 부족하고 온갖 것이 불편하겠건만 불편함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했다.

소설을 지나자 겨울채비는 어쩌고 있나싶어서 다시 찾았더니 요사를 헐어내고 기와를 얹은 삼간겹집의 대웅전이 아담하게 새로 섰다. 새로 모신 불상과 법단 말고는 갖춘 것이라곤 없고 송진 냄새와 어우러진 향 내음만이 가득하다. 신도들이 얼마나 되냐니까 예닐곱은 된다한다. 부족한 것은 없냐니까 불편함도 부족함도 없다는 전과 같은 대답이다. 감나무 가지 끝에 남겨둔 까치밥을 바라보는 명철스님의 얼굴은 해맑기만 하다. 탐욕의 저편은 어떤 곳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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