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와 행복
자원봉사와 행복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2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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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장
올해가 저물고 있다. 연말이면 많이 듣게 되는 단어가 ‘나눔’ ‘기부’ ‘희망’ ‘행복’과 같은 단어가 아닐까 싶다. 자원봉사계에서 12월은 훈훈한 미담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12월 5일이 UN이 정한 ‘세계자원봉사자의 날’이기도 하여 한 해 동안 수고한 자원봉사자들 중 타의 모범이 되는 분들을 전국에서 추천하여 시상하고 격려하였다. 자원봉사 자체가 대가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다보니 누구의 인정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어떤 분들의 미담을 발굴하여 상을 주는 것은 나눔의 중요성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알려 누구나 나눔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어느 땐가부터 우리는 새해에 “부자되세요”라는 인사를 덕담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이 말들을 주고받고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가 부자다”라고 하였다. 프롬의 말대로라면 결국 많이 나누는 사람이 되라는 인사라 할 수 있으니 좋은 인사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왠지 물질화, 배금화 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게 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작년에 KBS다큐를 통해 알려지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울지마 톤즈’를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을것 같다. 고 이 태석신부는 처음에 수단에 가게 되면서 가난하고 상처투성이인 그 사람들에게 뭔가는 주려고 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통해 행복을 배웠다고 했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가난한 곳에 봉사를 하러 갔는데 오히려 그들의 모습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것에 충격을 받고 행복을 배워 온다는 것을 볼 때 가난에 대해 생각해볼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더러 상대적인 비교를 하며 가난한 이들을 얕잡아 보거나 불쌍하게 볼 때가 많은 것 같다. 물질적인 소유가 행복을 보증하는 것도 아닌데 도와준다면서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 비인격적으로 대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눈다고 한다. 물론 좋은 행위다. 전적인 나눔이 내 존재 자체를 나누는 것이라 할 때 시간, 재능 등 할 수 있는 만큼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나눔의 행위가 총체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예를 들면 환경을 살리자는 봉사활동에 참가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환경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러 갔다 온 후 음식을 남기고 쓰레기로 내보내는 일은 없는지 등등. 국제자원봉사를 위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들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다. 내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낯선 외국인 노동자가 힘든 겨울을 나고 있고, 북한 이탈주민이, 이주여성들이 외로운 타국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과 친구가 되면 나는 좋은 국제협력 봉사를 하는 셈이다. 한때 개그에서 김치만두가 김치를 보며 너 안에 나있다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너’ 없으면 ‘내’가 없다. 이것이 연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이자 현실이다. 지금은 도움을 주고 있는 나지만 내일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우리는 봉사를 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한다는 마음으로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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