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커피는 사랑이다
진주성-커피는 사랑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05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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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

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커피는 사랑


2004년에 회사 명퇴와 아내의 투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험영업이었다.

누구의 가르침도 방법도 모르고 멸치 육수통에 커피 생두를 넣고 시꺼멓게 커피를 볶아 아침 출근하면  사무실 커피 추출을 시작으로 고객을 찾아가서는 쓰디쓴 커피 한잔을 건네면서 보험영업을 했었다.

만약, 그때 커피의 맛과 향이 더 좋았다면 보험 영업이 더 잘 됐을 텐데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걸 보면 맛이 없었나보다.

아침의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한잔을 했고, 종일 뛰어 다니느라 몸에 배인 먼지와 땀 냄새 대신 커피 향을 그리워했고, 입에 단내 나도록 상담하느라 쓴맛의 커피가 그렇게도 많이 땡겼나보다.

환갑을 넘기신 뒤 나의 어머니는 남은 여생을 편히 쉬어볼라 생각하는 순간 손자 3명의 식모가 되어 고관절이 닳아 없어지도록 고생하느라 뒤 늦게 자판기 믹스 커피는 싱겁고 달아서 맛이 없다며 에스프레소가 때로는 달게 느껴지고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가 간이 맞다 며 홀짝 홀짝 잘 들이키신다.

아들 커피를 마시지 못할 때면 드립커피대신 원두채로 냄비에 보리차 끓이듯이 집안 가득 커피향을 채우고 보온병에 담아 병원투어를 떠나신다.

카페를 오픈하고 나서는 입맛 까칠한 손님들로 더 맛있는 커피 로스팅과 드립을 배우기 위해 떠났고, 가슴 아프도록 사랑했던 여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커피를 알아야했고, 카페를 더 예쁘게 가꾸어야 했다.

노란 해바라기며, 빨간 장미꽃이며 아침부터 나무 가지치기와 화단 가꾸기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참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그 힘든 일도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들이키면 소문난 냉면집 육수보다 더 진하게 입안부터 위까지 짜릿하게 전해지면서 모든 피로가 없어지는 듯 했다.

나에겐 사랑 때문에 커피가 존재했었고, 커피가 사랑을 대신할 수 없었는지 그렇게 그녀는 떠났고 떠난 그 자리는 커피만이 남았었다.

내가 자식을 위해 커피를 마시고, 부모님은 나를 위해 커피를 마시고, 나는 그녀를 위해 커피를 마셨고, 자식은 부모님을 위해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커피는 자신보다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시는 존재다.

뜨끈한 생선어묵,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호빵이랑 마셔도 좋을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가 급히 마시고 싶다.

그리고, 오늘 저녁 살아 있을 때 제대로 된 커피 한잔 마셔 보지 못한 아내의 제사상에도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 한잔 올려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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