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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족함을 모르는 자와 아는 자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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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5  18: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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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족함을 모르는 자와 아는 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와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을 잇는 ‘혜음령’이란 고개가 있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한양에서 의주로 몽진(蒙塵)할 때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혜음령을 넘는 장면이 나온다. 옛날에는 한양에서 개성이나 평양, 의주 등 서북쪽으로 가려면 벽제역을 거쳐 혜음령을 넘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요충의 길목이었다. 그래서 도둑들도 극성을 부렸다.

그 혜음령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두 도적 이야기가 있다. 옛날 두 도적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을 해치고 도적질을 해서 빼앗은 장물(贓物)들이 더 이상 숲에 숨길 곳이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러자 두 도적은 장물을 혼자서 독차지할 욕심이 발동하여 서로를 죽일 생각에 빠졌다. 물론 장물은 둘로 나눠가져도 충분했지만 두 도적은 그것을 나누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둘 다 서로를 죽일 생각에 골몰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도적이 다른 도적을 죽일 요량으로 독(毒)이 든 술을 구하러 갔다. 그러자 다른 도적은 그가 돌아오면 단칼에 베리라 마음먹고 칼을 갈았다. 독이 든 술을 구해가지고 돌아오던 도적은 숲에 숨었다가 달려든 동료 도적의 칼을 맞고 목이 날아갔다. 목적을 달성한 도적은 흥에 겨워 죽은 도적이 가져온 술을 실컷 마셨다. 결국 그 역시 죽었다. 족함을 모르는 두 도적은 모두 죽고 말았다. 두 도적의 이름은 후세에 전해지지 않고 오직 도적이라는 이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 혜음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봉산이란 곳이 있다. 조선 중중 때 이조정랑, 동부승지,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낸 김정국(1485∼1541)이란 사람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돼 억울하게 삭탈관직(削奪官職)당하자 이곳으로 은거해 살며 이런 글을 남겼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넉넉하게 잠을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기에 ‘팔여(八餘)’라 했네. 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여덟 가지 넉넉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에서 스스로를 ‘팔여거사(八餘居士)’라 칭했다. 명봉산의 팔여거사 김정국은 훗날 다시 등용되어 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내며 선정을 베풀어 당대에 칭송을 얻고 후대에 이름 남겼다. ‘넉넉하게’ 라는 구절이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으로 메아리치고 있지 않은가!

족함을 모르고 장물을 서로 독차지하려다 결국 둘 다 죽은 혜음령의 이름 모를 도적들과 억울하고 힘든 세월을 넉넉한 마음 하나로 이겨낸 팔여거사 김정국의 ‘팔자’를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다름 아닌 ‘족함을 알고 모르고’라는 차이였다.

하지만 세상은 ‘팔여’보다는 ‘팔부족(八不足)’의 아우성으로 그득하다. 즉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멋진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여인과 한껏 즐기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고 여긴다. 여기 한 술 더 떠서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한탄까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말 그대로 ‘팔부족’이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것 중에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이 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정확히 2제곱미터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불후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삶을 마감한 남프랑스의 마르탱 숲속 오두막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은 모두 4평 남짓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는 모습이란… 왜 그리도 집착하고 욕심들을 내는지…?

족함을 모르는 것은 병 중 가장 큰 병이고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이다. 역으로 족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 비결이며 심신이 온전할 수 있는 근간이요 바탕이다. 자고로 족한 마음에 크고 작은 복이 깃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오늘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지난밤 내가 누웠던 자리를 돌아보면서 그 넓이가 2제곱미터 미만이라는 것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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