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용(龍)에 관한 소고
진주성-용(龍)에 관한 소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14 18: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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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용(龍)에 관한 소고


미꾸라지가 용(龍)이 되는 세상을 바라고 고대하던 젊은이들이 사법고시(司法考試) 폐지(廢止)와 치솟는 부동산(不動産) 물가(物價)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 한번 흙 수저는 대대로 흙 수저가 되는 구조 때문이다.

용에 대하여 자료를 찾아 옛날의 용과 최근의 용을 비교해 본다.

<문헌비고><증고문헌비고>에 보면 700년간 29차례 용이 출현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용이 호교(護敎)·호국(護國)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에도 용이 나오지만 직접적인 사탄은 아니고 상징적으로 본다.

<홍길동전>에 보면 세조 때 홍 재상이 낮에 잠을 자다가 청룡(靑龍)이 달려들자 놀라서 바로 깨어나 여종을 불러 관계를 가져 홍길동을 낳았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성장하면서 호부호형(呼父呼兄)하지 못했다.

용은 12지 동물의 5차례에 드는데 실제로 상징적이고 가장 동양적이다. 용은 이집트. 바벨론·인도·중국·베트남에도 가장 상스러운 동물로 춘분에는 하늘로 승천하고 추분에는 연못에 잠긴다고 믿었다.

왕의 물건에 용을 붙여 왕의 옷은 용포(龍袍)·왕의 얼굴은 용안(龍顔)·왕의 수레는 용가(龍駕). 왕의 기(旗)는 두 마리 쌍룡(雙龍)을 그렸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용자가 거명된 인명. 지명. 직명 등을 합해 총 2만3506회(원문 1만1885회)기록되었다. 태조 때 97회·영조 때 1090회·정조 때 588회·순조 때 490회 기록되어 조선시대엔 1년에 평균 50회씩 사용해 일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조의 개창을 암시하는 도조의 꿈에 흑룡(黑龍)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고 서북면 도원수 지용수(池龍壽)가 동녕부를 공격해 이겼다는 기록부터 인명에 용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승정원일기>에도 용자 사용은 총 74,494회 나오고 인조 때 2079회. 영조 때 16,217회. 정조 때 1만4554회. 순조 때 1만1177회 기록됐다.

<세종실록>에 동·서·남·중앙의 토용(土龍)에게 8일간 기우제를 지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세종대왕 때 목조부터 태종의 6대 까지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敍事詩)인데 <고려사><고려사 절요>를 편찬한 정인지·박팽년·신숙주·이개 등이 저술했다. 사찰에도 용상(龍象)이 많다.

민속에 의하면 국운이 융성할 때 용맹스런 용이 승천한다고 믿었다. 대한민국 용은 승천하지 못해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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