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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묘호(廟號)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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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9  18: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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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묘호(廟號)

한 나라의 왕, 또는 황제가 죽은 뒤에 그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는 종묘 사당에는 묘호(廟號)를 붙여준다. 묘호는 나름대로 다 뜻이 있고 역사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 살아생전의 업적을 평가하여 그에 맞는 이름을 붙이는 것인데, 그 기준은 왕으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훌륭하게 수행하였는지에 있다. 이 묘호는 왕이나 황제에게만 붙이는 것으로, 왕비 등에게 붙여주는 시호(諡號)와는 다르다.

묘호는 ‘조(祖)’나 ‘종(宗)’을 붙인다. 철저하게 왕의 업적을 기준으로 후계 왕과 신료들에 의해 결정된다. 왕의 업적을 평가하는 항목은 공(功)과 덕(德), 두 가지였다. 공은 이 땅의 무질서와 혼돈을 바로잡는 대업을 이룬 경우이고, 덕은 선대의 왕들이 확립한 훌륭한 정치 이념을 계승하여 태평성대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었다. 즉 왕의 공을 표시하는 글자는 ‘조’이고, 왕의 덕을 표시하는 글자는 ‘종’이었다. 말하자면 묘호에 ‘조’가 들어간 왕은 혼란기에 국가를 창업하거나 중흥시키는 대업을 완수한 왕으로 평가되었고, ‘종’자가 들어간 왕은 선대의 정치 노선을 평화적으로 계승하여 통치한 왕으로 평가를 받은 것이었다. 보통은 한 왕조를 건국하였거나 거의 망한 왕조를 부흥시킨 왕에게만 ‘조’를 붙이고 기타 왕들에게는 ‘종’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 조선 5백년사 27대 왕(518년)을 살펴보건대 ‘조’로 평가받은 왕은 7명, ‘종’으로 평가받은 왕은 18 명인데 ‘조’와 ‘종’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군’으로 평가 받은 왕이 2명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10대 연산군(燕山君)과 15대 광해군(光海君)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죽였으며, 폭군으로 지탄받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고, 광해군은 서적 편찬, 사고 정리 등 내치에 힘쓰고 명과 후금 두 나라에 대한 양단(兩端)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한 공(功)도 있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였으며, 뒤에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종묘에 그 위패가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창업자인 태조(太祖)나 고조(高祖) 및 중흥 황제들 외에 후대의 황제들에게는 조(祖)를 붙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려시대에도 태조(왕건)외에는 모두 종(宗)을 붙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조’를 붙이는 것이 ‘종’을 붙이는 것보다 더 권위가 있고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후계자인 왕이나 신하들이 아첨하느라고 억지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하여 때로는 조정(朝廷)에서 말썽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 18년을 마감한 것이 10.26이라는 정변에 의한 것이라면 조선왕조 3대 왕인 태종(이방원)은 집권 18년 만에 스스로 하야(下野)하고 왕위를 셋째 아들 세종에게 평화적으로 물려주었다. 이것을 내선(內禪:임금이 살아 있는 동안에 아들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던 일)이라고 하는데 이때 태종의 나이 52살 때이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시우스 왕은 왕의 자리에 앉을 때마다 머리위에 말총으로 날카로운 칼을 매달아 놓고 항상 조심했다고 한다. 다모클레스라는 친구가 그 자리에 앉아보다가 혼비백산, 도망갔다고 한다. 5년만 먼저 총리를 하고 그 다음엔 물려주겠다고 친구인 고든에게 굳게 약속한 영국 노동당의 토니블레어가 5년이 지난 후에도 넘겨주지 않다가 10년 후에 넘겨주자 이미 노동당은 만신창이가 되어 브라운 총리가 도중에 사퇴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권력의 순리적인 이양이 이처럼 어려운 것이라면 태종이 세종에게 자리를 넘긴 일이야말로 역사적으로 흔치 않는 용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의 이양을 국민이 선택하는 현재의 제도에서도 권력의 이양은 여전히 복잡하고 힘든 일이기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정권을 잡은 그 순간부터 정권을 내놓는 데 대한 마음의 준비와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선방(禪房)에 가면 신발 벗는 곳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찰이 있다. ‘신발 벗는 섬돌에서 자기 뿌리를 살피라’는 뜻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과연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라는 교훈이다. 세월의 두께와 무게가 실려 있는 법문(法文)이다. 박근혜 대통은 발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책임이 크고도 크도다. 등잔불 밑이 꽤나 어두웠던 모양이다. 아버지 집권 18(1961∼1979)년, 자기의 정치역정 18(1998∼2016)년 의 묘한 인연이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인가?

두 사람의 대통령이 탄핵되어 근대사 역사에 오점을 두 개나 남기게 되었다. 탄핵된 대통령을 우리는 ‘조’도 아니오‘종’도 아니니 ‘조 NO, 종 NO 탄핵 군’으로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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