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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을’들이 꿈꾸는 세상…다볕지기 김 주사의 꿈김일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교육위원
박철기자  |  pc2000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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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9  18: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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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수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함양군지부장이 자신의 인생을 담은 책 ‘다볕지기 김 주사의 꿈’을 펴냈다.
낯선 길,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다. 궁벽한 지리산 산골 군청에서 ‘철밥통’을 지키며 안온한 삶을 택할 수도 있었다. 김 주사는 그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송죽(松竹) 같은 삶의 궤적을 그려냈다. 그는 굳이 가시밭길을 택했고,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전국 최초로 군청에서 기자실을 몰아내고 공무원노조 창립, 공보지 철폐, 노조 홈페이지 개설로 언로 개방 등 파격적인 개혁들을 주도했다.

전 함양군청 공무원 김일수(61). 현재 직함은 다볕 민원행정 상담소장,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교육위원이다. 1981년 함양군청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2002년 전공노 창립 주역으로 나서며 평범치 않은 삶을 시작했다. 투사(鬪士)스러운 삶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공직을 개혁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 국민을 주인으로 여기자”고 외쳤다. ‘최순실, 박근혜’가 날마다 귀를 더럽히고 바닥을 맴도는 ‘청렴도’가 고향을 부끄럽게 하는 현실 속에서, 그래서 그의 삶은 더 역설적으로 빛난다.

용기와 치열한 삶의 결과는 공무원 신분 사형선고로 나타났다. 2004년 파면된 후 복직을 못했고, 올해 정년을 맞았다. 넘쳐나는 스토리를 감당 못해 결국 책을 펴냈다. ‘다볕지기 김 주사의 꿈’(불휘미디어)이다.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김 주사’로 상징되는 이 땅의 ‘을’들이 꿈꾸는 세상을 역사로 남기고 싶었으리라. 20일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출판기념회도 한다. 이날 정년퇴임식도 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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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전공노 창립 주역 공직개혁 앞장
용기 있는 삶의 결과로 공무원 파면까지

올해로 정년…굴곡 많은 인생 책으로 펴내
20일 출판기념회와 함께 정년퇴임식 열어

다볕 민원행정 상담소 열어 주민 무료상담    
전국 돌아다니며 공노조 올바른 이해 도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知行一致(지행일치)’의 삶
옳은 일을 알면 행동으로 나타내며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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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조합원 간담회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일수 공노조 교육위원
전공노 함양지부 사무실에서 ‘김 주사’를 만났다. 불꽃 같은 삶과 달리, 외모와 말투가 퍽 수더분하다. 그는 3년 전부터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을까?

“해직공무원이 전국적으로 아직도 120명 남아있다. 모임을 하다보면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왜 이걸 앞장서서 했나 하고. 그냥 평범한 김 주사를 했다면 시골의 면장이나 과장밖에 더했겠나? 그래도 나는 전국 교육위원으로서, 강원도, 제주도 등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도 다니고 함양도 많이 알리고 하니, 내 삶이 부끄럽지 않았단 걸 알려야 되겠다, 해온 걸 무언가 남겨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3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정리를 하기 시작한 거다. 왜냐하면 나는 일기, 메모 비슷하게 매일 활동을 다 기록했으니까.”

다른 저서도 있는지 물으니 “(출판은) 처음이다. 직장협의회 생기기 전에 당시 다음카페 ‘다산방’에 ‘정부미를 먹는 철밥통의 세계’로 활동했었다. 그때 필명이 다볕지기다. 거기 칼럼이나 글을 많이 올렸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전공노 활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함양(지부)이 전국에서 제일 먼저 했던 게 기자실 폐쇄, 공보지 폐쇄다. 당시 대화의 장을 열고 설문도 받고 하니 폐쇄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땐 산불 나면 (기자들이) “우리 신문 10부 더 봐줘.” 이런 식이었다. ‘대화의 장’이라고, 부서별로 노조 간부들과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언로도 많이 트였다. 구내식당도 경남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들었다. 이렇게 활동하니 지부 모범 사례로 홈페이지에 올라가고 함양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 골프장 건설 반대활동 모습
공직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일까?

“처음 수배당했을 때다. 2004년 3월 30일부터 수배가 됐다. 23일날 전국대의원대회를 청주서 했는데, 거기서 공무원 정치 자유화 선언을 했다. 8시간 대의원대회를 거쳐서 결론이 당시 우리 의견과 정강이 맞는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을 했다. 그러다보니 실정법 위반이 됐다. 기자회견 후에 ‘사전체포영장이 발부됐으니 도망가라’ 연락이 왔더라. 30일날 그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피신해서 활동을 하다가 진주서 체포됐다. 그때 처음 수배를 당하다 보니 갑갑하더라. 어디로 가야 할지, 갈 데도 없지. 공중전화는 또 왜 그리 안 보이는지(웃음)….”

덧붙여 그는 “2005년 1월 7일 자진 출두해서 서울구치소에 있는데(두 번째 구속), 변호사가 ‘각오하셔야 한다’더라. 첫 번째 구속됐을 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0년이었다. 자진출두하기 전 1월 5일날 대법원 최종선고가 났다. 담당변호사가 같은 죄로 쌍집(두번 반복 집행유예) 안 준다, 형이 징역 2년이 나왔는데 깎아도 1년은 나올 거다, 앞에 받은 게 같은 죄로 누적되기 때문에 1년 10월은 실형을 살아야 한다며. 그 말 듣고 나니 머리가 다 빠져버렸다. 그때 절망, 자포자기 심정이 되더라. 그때가 가장 암담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생활신조가 뭔지 물었다. 그는 김주업 전공노 위원장의 발간 축사 부분을 펼쳐보였다.
“평소 즐겨 쓰는 말이 지행(知行)이다.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알면 행동으로 나타내야 하고 행하지 않으면 위선, 자기기만이다. 대학에 나오는 지행일치, 지행합일이다. 언행일치다. 교사나 배부른 공무원들이 뭐하러 노동운동을 하느냐 이런다. 그럼 노동운동이라고 꼭 프롤레타리아 같은 없는 사람만 하느냐. 그럼 발전이 없다. 아는 사람도 같이 보태서 서로 도우는 게 단결하는 게 노동운동이지 따로 노는 건 아니다. 끝까지 나눠야 되고, 모르는 건 서로 일깨워줘야 되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현재 함양군 공직사회에 대해서 그는 특히 이렇게 입을 열었다.

“2000년에서 2005년 당시 함양군 청렴도가 상위권이었다. 직원들 사기도 높고. 자율적으로 하니 자부심과 긍지도 높았다. 지금은 타율성에 접어들면서 옛날의 철밥통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시 나나 내 뒤의 두 노조위원장이 다 공직에서 배제됐다. 나서봐야 손해 본다 이런 편견이 생겼다. 그때만 해도 우리 (노조) 홈페이지가 활성화돼 있었다. 익명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윗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못하는 거다.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올라가다 보니 노조 자체를 겁을 내는 거다. 내부감시제도가 잘돼있고 언로가 열려 있으니. 그러니 청탁이나 이런 건 할 생각도 못했다.

지금 하는 거에 대해 말할 건 못 되지만 얼마 전 지역주간지에 ‘공무원 일동’ 해가지고 (청렴도 하위권에 대한 함양군 사과문) 나오고 했던데, 누가 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내려면) 노조하고 협의도 하고 해야지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는가? 이런 분위기니 직원들도 나서봐야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말들 한다.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줘야 견제도 되고 내부감시도 되고 양심선언도 되고 하는데. 하도 못하니 주민들이 감사 청구도 몇 번이나 했나? 그런 공사 관계나, 군수, 군의원 포함해서 얼마나 말들이 많나? 나도 밖에서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듣는데,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윗분들이나 그렇지 공무원들이 그렇더나? 공무원들 욕 많이 본다’ 그리 말을 하곤 하는데. 어찌 보면 (나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방관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게 참 아쉽다.”

그는 또 “앞장서 나간다고 비범한 사람이 아니고, 뒤따른다고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귀찮고 후환이 두려워 못하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비겁한 것이다. 오히려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 비범한 사람이 아닐까”라며 “나만 혼자 괜찮으면 된다는 것이야말로 철저한 무사안일인데, 보면 나서야 되고 알면 행해야 된다. 함양 (공직)선배 중에 자기 돈은 쓰기 싫고 정부 돈이나 남의 돈 이용해서 나만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선배 공무원 중에 존경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더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의 포부는 뭘까?
“책에도 나오지만 내 꿈을 찾아서 간다는 말인데, 민중의 리더라기보다 같이 한 축이 돼서, 서민들을 위한 무료 행정상담도 하고 있듯이 사람이 근본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다.”

옆에서 누군가 “군수 출마 안 하나요?”라며 가담항설(街談巷說)을 직격으로 던져본다. 김 위원장은 손사래를 친다. “정치는 체질에 안 맞는 거 같더라. 얼굴색도 안 변하고 여기서 이말 하고 저기서 저말 하는 거 보면 존경스럽던데, 우리는…. 우리 마누라 하는 말이, ‘당신은 거짓말을 하면 얼굴색부터 달라진다. 딱 보면 안다’더라.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나오는 대로 쏘아붙이고 직설적으로 하는 게 낫지… (정치는 못하겠더라).”  박철기자

■김일수 위원장은
△1956년 경남 함양 출생 △1981년 경남지방공무원 행정9급 임용 △2000년 함양군공무원직장협의회 초대 회장 △2002년 전공노 함양군지부 초대 지부장 △2004년 전공노 부위원장 △2004년 공무원법 위반으로 파면 △2005년 전공노 위원장 권한대행 △2006년 전공노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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