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맞이 단상
새해 맞이 단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1.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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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새해를 맞으러 감포로 갔다. 지난해 창선삼천포대교에서 “2012년 해맞이는 문무대왕릉에서 하게 해주세요. 이것을 소원으로 빌었어요” 라는 딸아이 애원에 따라서. 저무는 토끼해의 노을을 차창으로 보며 달려야 했기에 미처 숙소 예약을 못 했다.  

이런 출발은 처음인데다 아이들까지 동행한 터라 차 안에서 온라인으로 검색을 시도했다. 그러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이니 현장에 가서 보기로 하자며 일단 문무대왕릉을 치고 달렸다. 집을 나설 때는 감은사지탑에서 일몰 보기를 원했지만 차가 밀려 울산 무거로타리에서 해는 이미 지고 말았다.

봉길해수욕장에는 텐트와 차량과 사람들로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3000원을 내고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저녁을 먹었다. 근처에는 모텔도 찜질방도 없어 그냥 차 안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열 시간이 결코 만만찮기는 했지만.

백사장을 산책하기에는 한밤중에 허공으로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칼날 같은 바닷바람이 공포였지만 그래도 걸을만 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틈에 몽돌 하나를 줍다가 하마터면 물세례를 제대로 받을 뻔 했다. 딸이 이 모습을 보고 그러기에 왜 그런 욕심을 부리느냐며 그 돌멩이를 바다에다 던졌다.

게다가 엄중 경고까지 했다. 여기 온 사람들이 모두 하나씩 가져간다면 훗날 여기 뭐가 남겠느냐며 (자기는 나중에 역사를 전공해서 꼭 경주에 와서 살고 싶으니 이곳을 잘 지켜야 한다면서.) 딸이지만 무안했다. 시민의식이 수준이하라고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졸지에 한 방을 얻어맞은 꼴이었다.

그사이 우리 차 바로 옆에다 주차한 부산 산 94년형 소나타, 그 차주는 차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우리 차를 건드리며 흠집을 냈다. 새해 아침만 아니라면 열판을 붙어도 분이 안 풀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침까지 끝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뜨는 해만 보고 차를 쏙 빼갔다. 차번호와 그 작태를 인터넷에다 올리고 싶었지만 새해의 상서로운 기운들을 그렇게 쏟고 싶지 않아서 또 참는 이 심정을 그들이 알련지?

밤이 깊어 갈수록 해변은 방생법회를 하는 이들과 굿을 하는 이들, 백사장 곳곳에다 촛불을 켜놓고 바다를 향해 두 손으로 빌며 절하는 이들, 그 틈에서도 아이들의 스파클러 폭죽놀이와 마을에서 준비한 불꽃놀이로 새해의 여명이 어수선하기만 했다. 차 안에 방울소리와 폭죽소리가 밤새도록 들릴 정도였다. 이는 일출 때까지 계속 되었다.

TV에서 보던 엄숙한 새해맞이 아침 장면과는 너무도 달랐다. 새해를 어디서 어떤 형태로  맞이하건 그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저럴 거면 왜 굳이 이런 곳을 찾을까. 최소한 이런 소리는 안 듣고 가도록 처신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더욱이 새해 새아침에는.

밤 새 먹고 마신 야영장이나 철야로 굿 하고 불공드린 백사장이나 더럽고 지저분하기가 마찬가지라면 이는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식의 해맞이를 했던가. 조상들은 정월 초하루를 원단(元旦)이라 했고 신일(愼日)라 했다. 해를 맞는다는 명분으로 끼리끼리 모여서 왁자지껄 술판이나 벌이고 해장국으로 새아침을 맞지는 않았다.

창문을 조금씩 열어둔 채 차에서 밤을 지새자니 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수련회 하던 때가 떠올라 아이들에게 그 얘기들을 들려줬다. 얘들은 자기들이 1박2일 주인공 같다며 이게 호텔에서 자는 것 보다 더 재밌다고 했다. 가끔 이런 체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단, 어른들이 다소의 불편함을 먼저 감수해야겠지만.

왜 요즘 아이들이 점퍼 하나 사는 데도 ‘네파’는 안중에도 없고 ‘노스페이스’ 타령만 하는가. 초딩들 중딩들이 왜 스마트폰을 필요로 하는가. 가정에서부터 위아래를 모르는 밥상이 되고 보니 교실 파괴나 왕따 현상도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동안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잘 먹이고 너무 좋은 곳에서만 재운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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