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닭의 철학
아침을열며-닭의 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1.02 19: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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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닭의 철학


정유년, 닭띠 해가 밝았다. 닭의 해라고 하니 닭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본다. 생각해 보면, 닭이 저 12간지의 하나로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한 상징인 저 곰조차도 그리고 새 중의 새인 독수리조차도 들어가지 못한 그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만큼 우리 인간과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 아득한 신라시대의 유적에서 계란 껍데기가 발견된 적이 있으니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닭은 인간의 가금으로 그 집에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몇 해 전 정지훈, 송혜교가 연기해 큰 인기를 끌었던 <풀하우스>라는 드라마에서 남주 영재가 여주 지은에게 “넌 조류야 조류!”라고 흉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생각도 할 줄 모르는 ‘닭XXX’라는 뜻이다.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하는 귀여운 커플 사이라 그렇지 사실 여간 심한 모욕이 아니다. 그런데 지은도 지은이지만 만일 닭이 이 말을 알아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닭들에게도 아마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만천하의 닭들을 위해 변호를 자임해보자.

닭들은 기본적으로 윤리적 존재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고기가 되기 위해서 존재한다. 자기가 죽어 인간들에게 영양을 제공하니 그야말로 살신성인이다. 게다가 그들은 알까지 고스란히 인간들에게 갖다 바친다. 전 세계 맥도널드 매장이 3만5000개 정도인데 한국의 치킨집은 3만6000개 정도라고 하니 그 의미가 결코 작을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삼계탕 닭개장 찜닭 통닭을 하는 식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양계장, 계란 유통업 등도 다 그들이 먹여 살린다. 또 그게 없으면 안 되는 수많은 음식들도 다 그들 덕이다. 이를테면, 프라이, 계란말이, 삶은 계란, 계란빵, 계란탕, 카스텔라, 케이크, 닭가슴살 통조림, 닭강정, 닭발, 닭똥집, 오므라이스…한도 끝도 없다. 호텔에서 포장마차에 이르기까지 그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결국은 다 닭이다. 그것들은 또한 닭고기와 계란음식을 좋아하는 만천하의 아이들에 대한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가능케도 한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의 수탉들은 시계 대신 사람들에게 새벽을 알려주었고 알람 대신 부지런한 사람들을 깨워주었다. 그 의미인들 작을손가.

또 있다. 닭들은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알들을 품어 병아리를 깐다. 나는 어린 시절 쪼그리고 앉아 그 장면을 신기하게 지켜본 기억이 있다. 이윽고 보소송한 솜털의 병아리가 나와 삐약거리며 어미를 따라다니던 모습은 감동이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떤가. 어미가 자식을 품어주지 않아 굶어죽고 맞아죽고 하는 아이들조차 없지가 않다. 닭들은 그렇게 병아리를 죽이지는 않는다. 그 점에서는 인간보다 낫다.

또 더러는 인간들에게 뜻하지 않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같은 식으로 폭압에 항거하는 용기와 꿋꿋한 희망에 대한 신념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식으로 철학적 토론의 주제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나 ‘군계일학’처럼 소나 학과의 비교 속에서 비하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교거리의 제공 자체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기희생의 윤리에 속할 수 있다.

이렇듯 닭은 윤리적 존재다. 그런 닭이 당국의 부실한 대처로 AI(조류독감)에 걸려 무려 2500만 마리(오리와 합친 수)가 넘게 살처분되었거나 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 없는 ‘닭XXX’가 아니라면 그 닭들에게 고마운 줄은 모른다 치더라도 최소한 미안한 줄은 좀 알아야겠다. 아니 그것은 또 모른다 쳐도 그런 부실로 생계가 막막해져 속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저 수많은 농민과 상인들에게라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던가. 새해가 밝았는데도 세상은 여러 가지로 아직 어둡다. 이 어둠을 깨워줄 수탉 같은 지성의 꼬꼬댁 소리가 그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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