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정유년(丁酉年)의 사건들
진주성-정유년(丁酉年)의 사건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1.04 18: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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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정유년(丁酉年)의 사건들


정유년(丁酉年)서기 697년은 발해 건국의 직전 해로 고구려 유민 대조영(大祚榮)이 건국 준비를 마치고 698년에 새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서기 517년(밥흥왕 4년)457년(진흥왕 41년)정해년으로 통일을 위하여 안정적인 기반에서 정책을 실현했던 시기로 본다.

서기 1179년은 고려 무신정권의 경대승의 도방정치가 진행중이었다. 서기 1237년은 고려 고종 24년으로 몽고침입을 대비해 불사로서 국가안정을 기원하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남해군 해변에서 새기고 제작하고 있을 때 이다.

서기 1417년은 조선 태종17년으로 대학자 신숙주·박팽년 선생이 출생한 해로 탄생 600주년이 되는 해로 박팽년(朴彭年)1417~1456년 <훈민정음> 창제 때 함께 하고 단종 복위운동을 전개하다 순절했다. <고려사><고려사 절요>를 집필한 분이다. 박팽년은 본관이 순천이고 1434년(세종 16년)알성문과에 급제하고 우승지·형조참판, 1455년(세조원년)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

단종복위운동을 전개하다 발각되자 세조를 향해 ‘나으리’라고 부르고 장계에서도 신(臣)을 붙이지 않아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7일 만에 순절했고 가족들은 노예로 끌려가 일생동안 고초를 당했다. 뒤에 시호를 받고 신원이 복원되었다.

신숙주(申叔舟)1417~1475년 고령 신씨로 조부는 공조참의 신포시이고 부친은 공조참판 신장이며 처는 지성주사 정유의 딸이다. 친시문과에 급제하고 박팽년 등과 훈민정음 창제 때 함께하고 도승지가 되고 수양대군이 즉위하자 동덕좌익공신으로 고령군에 봉해졌다. 우의정에 오르고 함길도 도체찰사에 제수됐다. 남이 옥사를 처리해 정난익대공신이 되었고 성종 때 영의정에 올랐다. <동국통감><세조실록>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서기 1597년은 선조 30년으로 정유재란이 발생한 해로 기억된다. 임진왜란으로 크게 위축된 왜가 황당한 요구 즉 한강 이남을 왜에게 넘기라. 원의 공주를 왜에게 시집보내라 등을 요구하다 회담이 결렬되자 재침하니 정유재란이다.

1657년(효종8년)은 봉림대군이 볼모로 갔다가 돌아와 즉위하고 인조 때 굴욕을 갚기 위해 북벌을 준비하다 이 때 상당히 위축되었다. 그러나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이 나선(러시아)정벌에 나서 두 차례 모두 승전하자 청나라 북벌의 희소식으로 작용했으나 효종이 일찍 승하해 좌절됐다.

1897년은 광무 원년으로 조선을 마감하고 대한제국으로 출범하고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2017년에 제7 공화국이 출범할 것인지 궁금하다.

금년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라고 하며 닭은 부지런하고 정이 많고 창의적이고 명석하고 예찰력이 있어 새벽을 깨우는 12지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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