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하동군 생활개선회 지근숙 회장
[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하동군 생활개선회 지근숙 회장
  • 배병일기자
  • 승인 2017.01.12 14:1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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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밝아질 것

빈손으로 시작한 축산업 끊임없는 노력으로 결실
하동군 1호 벼 육묘장 사업 시작 농업 경쟁력 확보
생활개선회 봉사는 아픔을 극복하는 삶의 활력소 
농촌 삶의 희로애락 배우며 미래 농촌 희망 열어가

▲ 하동군 진교면에서 축산업과 벼 육묘, 부추 재배를 하고 있는 지근숙 회장
◆롤러코스터처럼 인생을 살자
지근숙 하동군 생활개선회 회장은 하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결혼 이후 2008년 생활개선회 활동을 시작하여 2009년부터 진교면생활개선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행사지원, 불우이웃돕기, 독거노인돕기 봉사활동 등을 펼쳤다.

2015년부터 하동군 생활개선회 총무직을 맡으면서 하동군 생활개선회의 위상 제고와 농촌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올해부터 생활개선회 회장의 중임을 맡아 활동하고 있는 농촌여성이다.

우리 부부의 만남은 착실했던 동네오빠로만 알고 지내던 어느 날 나를 좋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성실하고 기술이 좋았던 남편은 하동에서 제일 큰 카센터를 시작했다. 나는 경리를 보았고 돈 관리를 하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했고 1남 2녀를 낳고 재밌게 살았다. 그러던 중 카센터에 큰 불이 났다. 당시 가게 99㎡에 최신 부품들이 가득 있었고 모든 재산들이 있던 가게가 한꺼번에 불타버렸다. 당시 큰아이 7살, 작은아이 5살, 막내는 낳은 지 100일 된 어린 아이 3명과 우리 부부는 가까스로 알몸으로 나왔다.

누전으로 인한 큰 불로 이웃집까지 손해를 입어 보상을 해주고 나니 우리 부부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라 막연하기만 했고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낙심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아이 셋을 위해 살아야만 했다. 남편의 손재주와 작업할 때 쓰던 공구를 그을음 속에서 찾아 산 밑에 조금한 집을 지었다. 단칸방에서 우리 다섯 식구는 등을 붙이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피폐한 마음이었지만 어릴 때 부모님의 “땅은 노력한 만큼의 보답이 있다”는 말을 가슴으로 새기며 우리 부부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밤낮없이 황무지를 개간하고 남의 산을 일구어 폐간에 소 풀 먹이고 낮에는 남의 타작 일을 하는 등 밤 12시~1시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의지라는 엄청난 에너지로 악착같이 올라설 수 있었다. 아이들은 밥과 고구마 등 간식거리를 두고 하루 종일 아이들만 방에 있어야만 했다. 지금도 아이들은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에서야 그 시절에 그렇게 힘들었기에 지금의 감사함을 진정으로 느끼는 것처럼 평탄한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굴곡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진실하고 애틋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 하동군 생활개선회 사랑의 고추장 나눔행사
◆부부의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
맨주먹으로 시작한 농사는 IMF가 터지면서 더 어려웠고 동물을 좋아했던 남편이 소 한 마리 가격이 5만원할 때 소를 사 모은 것이 축산업의 시작이었다. 소 한 마리를 잘 먹여 축사를 짓고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키웠다.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축협에 교육이며 사업설명회에 한 번도 빠짐없이 배워나갔다.

소를 키우는 재미가 좋았고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농업기술센터 농업인대학에 한우반을 들어가게 되었다. 어렵게 살아가는 가운데 농업기술센터는 나에게 있어서 삶의 활력소였다. 그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남편은 농업경영인회 회장을 4년간 하였고 나는 한우협회 총무를 11년간 일을 했다. 축산업 운영에 대한 실력이 늘면서 수송아지는 6개월이면 판매를 해서 사료 값으로 대체하고, 암송아지는 성우로 키워 성우 20두가 넘어서게 되자 축사가 좁아져서 고생이 많아졌다. 그래서 국가축산자금을 융자받아 1000㎡ 넘는 넓고 시원한 최신시설의 축사로 신축했다. 농가주택도 지원받아 새 집을 마련하는 행운도 가졌다. 축산업은 날로 번창했다. 차츰 200두의 목표를 가지고 두수를 늘렸다. 송아지 관리부터 어미 소의 임신과 출산을 도맡아서 전문인이 되어갔다. 착실한 남편 덕분에 소는 최고로 200마리를 키워 소 값이 300~500만원할 때 소 키운 보람을 느꼈다. 구제역 파동이후 소를 많이 줄였고 지금은 75두 정도 키우고 있다.

2006년도부터 벼 육묘장 사업을 하동군 1호로 시작했다. 급변하는 국·내외 농업정책의 변화에 따라 수입쌀 국내 시판이 본격화됨으로써 이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하동군에서는 품종간 혼입을 막고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해 단일품종 생산을 장려하고 있으며, 규격묘 대량생산을 통한 쌀 생산비를 절감하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5년 총사업비 2억 4000만원을 투입하여 최첨단 벼 육묘공장을 하동군 1호로 벼 육묘장을 시작했다.

볍씨의 온탕살균소독과 동시에 균일한 초기발아가 가능한 대형 볍씨발아기와 안전한 출아를 위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실내 자동온도조절이 가능하고 병원균의 초기 감염을 예방할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의 발아실을 갖춰 묘의 생육에 따라 관수량의 조절이 가능한 무인 자동관수 시설, 육묘공장 내 온도변화에 따라 실내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자동제어시스템을 갖춘 최첨단 시설이다.

이로써 규격묘 대량생산 안정공급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향후 농촌 노령화에 따른 일손부족 해소와 생산성 향상으로 대외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게 되었으며 새로운 기술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 사업이었다.

▲ 한국생활개선회 하동군연합회 임원진들이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2011년부터 비닐하우스를 시작하였고 부추작목에 대한 전문기술이 부족하여 진주에 있는 과학기술대학교 원예학과를 입학하여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다. 지금은 부추 재배의 선도농가로 15동을 하고, 벼 육묘 4동과 한우 75마리를 키우고 있다.

농사를 성공적으로 해오면서 우리 부부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농사에는 시기가 있는데 그 운만 믿지 말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근숙 회장은 농업·농촌발전과 생활개선회 육성에 큰 역할을 해온 공로회원으로 경상남도지사 표창을 받았고 올해 농협중앙회에서 최기철, 지근숙 부부(구룡농장)를 6월의 새농민상 부부로 선정하여 새농민상을 받았다.

▲ 하동군 생활개선회 된장 만들기 이웃돕기 활동
◆봉사로 다시 찾은 삶의 행복
소와 벼 육묘장사업, 비닐하우스로 집안은 일어났고 안정화 되어 갔다. 그러던 중 남편은 쇼크를 받아 당뇨가 왔고 나는 2014년도 갑자기 쓰러졌다. 평소에도 가슴이 두근두근 해서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던 게 큰 병이 되고야 말았다. 그날도 비닐하우스에 부추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는데 숨을 쉴 수가 없고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남편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병원으로 갔다.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을 치를 뻔했다고 한다. 장작 5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을 했고 수술 후 체력을 회복하고 생활개선회 활동에 참여하여 봉사하는 기쁨과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 지난 9일 열린 한국생활개선회 하동군연합회 연시총회 및 과제교육에서 지근숙씨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모든 농촌여성이 그렇겠지만 집안일과 농사일을 병행하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생활이다. 그러한 나에게 생활개선회 활동은 농촌생활의 활력소였다.

카센터를 하던 젊은 시절에는 가게에 매어 있어 생활개선회 궁중음식, 폐백음식교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 회장은 진교면 생활개선회 임원 활동에 애정을 쏟았다. 농촌여성단체로써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고, 보급하는 학습단체가 매력적이었다. 생활개선회는 면사무소와 연계하여 김치, 고추장 등을 담가 연말 불우이웃돕기 등 여러 활동을 했다. 그럴 때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준 회원들이 너무 고마웠다. 어려운 농촌생활 중에도 이웃들과 함께 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받음을 알기에 지금은 오늘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올해 결혼 30년이 넘었다. 삼남매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이제는 딸아이가 영화티켓을 예매하여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센스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시간이다. 눈을 감고 뒤돌아보면 그 동안 인생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노고한 것은 헛됨이 없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슬기롭고 지혜롭게 그리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 2008년 생활개선회 활동을 시작하여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진교면 생활개선회장으로 활동, 2015년부터 생활개선회 하동군 총무직을 맡고 올해 회장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항상 배움의 기반이 되었던 생활개선회의 활동으로 농촌의 소득증대와 미래의 농촌에 희망이 되는 선도자가 되도록 노력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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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 - 문차영 농촌지도사 (하동군농업기술센터)
농업의 전문화 위해 도전하는 농촌여성

하동군 진교면에서 축산, 부추농사를 짓고 계신 지근숙 회장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여성이다. 그 많은 농사일을 하면서 지난해까지 생활개선회 하동군 총무의 맡아오다 올해부터 회장으로 회원들과 소통하며 활동하고 있다.

젊은 시절 화재로 인하여 어려움 속에서 억척스럽게 농사에 종사했고 마을의 궂은 일에도 솔선하는 여성농업인으로써 자신의 힘든 일보다는 단체의 일에 발 벗고 나서서 일하시고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항상 봉사하며 사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

지근숙 회장은 농장의 규모를 늘려가면서 농사의 전문화와 내실 있는 농장으로 키우기 위해 부부가 함께 작목 트랜드를 읽어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인대학 한우반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원예학과에 입학하여 주경야독으로 노력하고 앞으로 농업이 나아가야할 방향도 생각하고 작물을 선택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즐기며 할 줄 아는 농업인이다.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 못할 만큼 넉넉한 미소와 한결같은 모습으로 농업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의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밝아 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배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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