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그리고 철학 - 두 번째 이야기
예술, 그리고 철학 - 두 번째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1.0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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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조/premiere 단장
'예술은 언어 이전의 사태이다'. '예술은 결코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시공간적 찰나, 번뜩임이다'. 내가 정의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라도 정의가 내려진 무엇은 이미 무엇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도덕경). 언어가 쳐 놓은 테두리 속에 순식간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 또한 이제 막 '예술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지금-여기'에 내가 쓰고 있는 언어들의 세상으로 이미 들어와 버린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이제 와서 이것은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무슨 근거로?

'예술'이란 낱말은 단지 지금 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벌이고 있는 '언어 게임(Language Game)'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enstein)이 고안해 낸 그만의 독특한 철학적 개념 - 에서 그 낱말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다른 낱말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획득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이라는 낱말이 지니는 의미 그 자체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 이는 내가 벌이고 있는 이 지면 상의 언어 게임의 규칙들이 그 자체로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이 게임의 규칙이란 단지 게임 참가자들(기본적으로 나, 경남도민신문, 기고를 담당하고 있는 하은희 기자, 그리고 독자분들)의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언어 게임의 영구적 규칙은 결코 정해지지 않는다. 언어 게임의 규칙이 일시적 계약에 불과하다면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이루는 낱말들의 의미의 영구적 규칙 또한 설정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언어의 의미가 영구적 규칙성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다시 한 번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에 기대고자 한다. 이런 저런 철학적 개념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 지금-여기에 위치해 있는 나의 한계다). 언어의 의미가 영구적 규칙성을 갖고 있다고 믿게 되는 이유는 낱말의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에 있다. 오해하기 십상인 개념이다. 한 낱말의 의미들이나 용법들 사이의 유사성을 떠올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 유사성은 한 낱말이 쓰이는 용처(用處)들 사이의 유사성이며 처소들이나 상황들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유사성이다. 가족 유사성은 의미의 불확정성, 한 발 더 나아가 의미의 결정불가능성, 나의 이 언어 게임에 있어서는 '예술'의 정의불가능성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유력한 근거로 지금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지닌 채 내가 지금 이 지면을 통해 벌이고 있는 게임, '예술, 그리고 철학 - 두 번째 이야기'라는 언어 게임이다.

요즈음에 이르러 '예술'이라는 낱말이 쓰이는 상황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한 '철학'이라는 낱말이 쓰이는 상황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살짝 생각해 보는 척을 하고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철학적ㆍ예술적 담론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떠올린다. 철학은 왜 예술을 끌어들이며, 예술은 왜 또 그리하는가. 서로에게 서로가 있지 않아서인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지 않다.

예술은 언어 이전의 사태이며 결코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시공간적 찰나, 번뜩임이라는 정의를 앞서 내린 바 있다. 그렇다면 철학의 정의는 철학은, 특히 이성중심주의적 전통에서 볼 때, '언어 이후의 사태'이며 '예술을 비롯한 모든 것을 대상화하여 언어의 테두리 안에 가둔 후 그것들을 언어로 환원해 버리는 시공간적 정주(定住), 이성의 빛(lux rationis)'이다. 언어를 기준으로 삼을 때 예술은 사전적(事前的)이며, 철학은 사후적(事後的)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언어의 대상이 된다. 예술이 철학에, 비평에 종속되는 이유다. 하지만 언어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예술의 존재론적 가치의 함량이 철학보다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술은 결코 언어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 끊임없이 예술을 유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로의 환원 과정을 거친 예술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철학과의 결별은 먼저 예술에 의해 선언되어야만 한다. 그 선언이 있은 후에라야만 다음의 선언이 힘을 얻을 것이기에. "예술가를 자처하는 유사철학자들이여, 이제 그대들이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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