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잃어버린 겨울밤
진주성-잃어버린 겨울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1.19 18:11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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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잃어버린 겨울밤


그토록 길고 길던 겨울밤이 텔레비전이 거실과 안방에 자리를 잡고부터는 짧아져버렸고, 대낮같이 밝아진 가로등불빛이 긴긴 겨울밤의 어둠 짙은 골목길을 희미하게 비춰주던 가로등의 정취마저 매정하게 앗아갔다. 밤이 깊도록 옛 이야기 듣던 손주들마저도 할머니의 무릎을 떠난 지가 오래고 담장을 넘어오던 이웃집의 노가리 굽는 냄새도 사라진지 오래이며 따끈한 고구마에 동치미국물 맛도 잊은 지가 오래다.

코끝이 맵싸하게 얼어붙은 겨울밤, 찹쌀떡을 팔며 꽁꽁 얼어붙은 골목길의 정적을 처량히도 울리며, 애절한 여운을 길게 남겨놓고 멀어져간 소년은, 지금은 세월의 강 건너편 어느 골목길을 헤매고 있을까. 찹쌀 떠-억! 하고 긴 꼬리의 여운을 어둠의 골목길만큼이나 길게 남기고 멀어져갔어도 애처로운 여운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꼬리 끝이 남아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 저만치의 리어카 위에 카바이드 가스등을 밝히고 구수한 군밤냄새로 깊은 밤 시린 마음까지 따끈하게 굽어내던 털모자 아저씨도 온다간다 말도 없이 어디론가 떠나갔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길고 긴 겨울밤의 싸늘한 별을 헤며 카바이드 가스등에 불을 밝히고 까뭇까뭇하게 군밤을 굽고 있을까.

이제야 그들을 빈손으로 보낸 것만 같아서 가슴이 시리다. 방음하고 방열하여 살기 좋게 꾸민다고 이중창을 붙인 것이 이리도 매정하게 골목길의 발자국소리까지 막아버릴 줄은 미처 몰랐고, 좀 더 수월하려고 몰고 나선 승용차가 겨울밤 골목길의 질박한 풍경까지 짓뭉개버리고 이토록 가슴을 황폐화시킬 줄은 미처 몰랐으며, 현관문 ‘찰까닥’ 하고 닫고 산 것이 이토록 외로움만 남길 줄은 미처 몰랐다. 긴긴 겨울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여명의 어둠속에 시꺼멓게 웅크린 채 하얀 수증기를 ‘치-익 칙’ 품어내며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 것만 같았던 새벽열차가 끝내는 떠나면서 이 모두를 실어갔을까. 그들이 떠나간 빈자리에는 싸늘하게 식어만 가는 우리들의 가슴이 그날의 겨울밤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어 서러움만 가득하다. 긴긴 겨울밤, 밤이 길어서 남긴 사연이 수두룩한데 오롯이 남은 것은 외로움이고, 보내지 말았어야할 겨울밤의 깊은 정을 보내고 서러워서, 속절없이 외로워지는 그리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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