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17-11-23 21:58:58
경남도민신문
뉴스 지역 시민기자 기획 오피니언 커뮤니티 LIFE 알림 게시판 포토
오피니언강신웅 칼럼
칼럼-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9)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경남도민신문  |  gndm1000@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1.22  18:13:0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9)

지난번에 이어 중국 문학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왕구사(王九思)·왕강(王康)·왕도곤(王道昆)·왕충(王衝)·진여교(陳與郊)·능몽초(凌濛初)·서양휘(徐陽輝)·서세우(徐歲羽)·내집지(來集之) 등이 있다. 이들은 지역상으로 거의 남방이며 시대적으로 명 중엽 이후의 사람들이다. 풍격상으로는 원극과 상반되어, 원극을 속(俗)과 박(樸)으로 집약한다면 명극은 아(雅)와 화(華)로 집약할 수 있다. 명의 전기는 거의 원을 답습했다. 그 중에서도 <금인기(金印記)>·<서소주사(敍蘇奏事)>가 원의 4대전기와 겨룰 수 있다.

초기 작가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고명(高明) 외에 <살구기(殺拘記)>로 이름을 얻은 서중유(徐仲由)가 박졸(樸拙)한 풍격으로 <비파기>에 상적(相敵)하고, 또한 <비파기>를 모방했다고 하는 <형채기(刑釵記)>를 쓴 주권(朱權)이 유명하다. 명 중엽의 전기 작가로는 <완사기(浣沙記)>를 남긴 양신어(梁辰魚), <홍불기(紅拂記)>의 장익봉(張翼鳳), <옥결기(玉抉記)>의 정약용(丁若鏞), <수유기(繡襦記)>의 설근연(薛近宴), <옥합기(玉合記)>의 매정조(梅鼎祚) 등이 있다.

말기의 작가로는 탕현조(湯顯祖)·심경(沈璟)·범문약(范文若)·이옥(李玉)·완대성(阮大鋮)·오병(吳炳) 등을 들 수 있는데, 탕현조와 심경이 등장한 뒤로부터 명대 전기는 심·창의 쌍병 천하를 이루었다. <자채기(紫釵記)>·<환혼기(還魂記)>·<남가기(南柯記)>·<한단기(邯鄲記)> 등 소위 임천(臨川) 4몽(夢)을 남긴 탕헌조는 그 전기가 거의가 당인소설에서 취재한 것이고, 그의 출제작인 <환혼기>만이 억조(臆造)된 것이다. 염려한데다가 소박한 그의 문장은 새롭고 기운찬 것이 특색이나 음률에 결함이 있다.

<홍거(紅渠)>·<분전(分錢)>·<매검(埋劍)>·<십효(十孝)> 등 17종을 남긴 심경은 차라리 그 문장이 되지 않을 지언성 음률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여 탕의 주장과 대치했다. 하나는 숭사(崇辭), 하나는 상률(尙律), 하나는 천재(天才)를 중시, 하나는 공력(功力)을 중시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는 심경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 밖에 <원앙화몽(鴛鴦花夢)>을 남긴 범문약, <일인영점(一人永占)>을 남긴 이옥, <연자전(燕子箋)>·<춘등미(春燈謎)> 등을 남긴 완대성, <녹목단(綠牧丹)>·<화중인(畫中人)> 등 5종을 남긴 오병 등이 있다.

대체로 명초 작품이 소박하다면 중기는 전려(典麗)했고 말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야하지 않은, 즉 ‘천심농담아속지간(淺深濃淡雅俗之間)’의 풍격을 지녔으니 명대는 전기의 황금시대인 것이다.

청대에 들어와 전기는 처음에 대부분이 탕현조를 배워 성했다가 끝에는 쇠퇴했다. 그러나 청대로서의 특이한 점은 이때의 전기가 실질적이고 거기에 반영된 세태는 풍속을 개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작가로는 <도화선(挑花扇)>을 쓴 공상임(孔尙任), <장생전(長生殿)>을 쓴 홍승(洪昇), <말릉춘(秣陵春)>을 쓴 오위업(吳偉業), <균천락(鈞天樂)>을 쓴 우동(尤侗), <일가언(一家言)>을 쓴 이어(李漁) 등 다섯 사람을 청초의 대표 작가로, 다시 <설중인(雪中人)> 등을 남긴 장사전(蔣士銓). <행화촌(杏花村)> 등을 남긴 하윤(夏錀), <지감기(芝龕記)>의 저자 동용(董榕) 등 셋을 청 중엽의 대표 작가로 칠 수 있다.

끝으로 <제녀화(帝女花)>의 작가 황헌청(黃憲淸)과 <계지향(桂枝香)>의 작자 양은수(楊恩壽)가 청말을 장식하고 전기의 곡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끝가지 작자들의 태도는 정중했고, 그들이 작품을 통해서 민간의 풍속을 개화하려는 간접적 노력은 그치지 않았었다.

<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경남도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ㆍ고충처리인
경남 진주시 동진로 143   |  대표전화 : 055)757-1000  |  팩스 : 055)763-22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창효
Copyright 2011 경남도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ndomin.com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소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무단전재 및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