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제(祭)와 재(齋)
칼럼-제(祭)와 재(齋)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1.23 18:1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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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제(祭)와 재(齋)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의 의례 중 일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제’와 ‘재’를 구분하는 법이다. 이 두 글자는 한글과 한자가 모두 다르지만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예전에 유교의 ‘제’는 ‘좨’로 발음했다. 그래서 지금도 잘 관찰해 보면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제사 주관자를 ‘제주’라고 가볍게 발음하지 않고 된발음으로‘좨주’라고 무겁게 발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와 ‘좨’의 중간으로 발음한다고 보면 되겠다. 물론 현재로는 이 발음을 효율적으로 전수할 수 없기 때문에 ‘제’로 통일된 상황이다. 이렇게 되자 발음만으로는 ‘제’와 ‘재’, 양자를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제사라고 할 때의 ‘제’는 망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의식이다. 많은 음식을 진설하고, 이것을 망자가 드신 후에 상물림해 다시금 후손들이 먹음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사이다.

제사에 많은 음식을 차린다는 것은 ‘제삿날 잘 먹으려고 열흘을 굶는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먹지도 못하는 제사에 절만 죽도록 한다’, ‘제사를 도와준 자는 맛보고 싸움을 도와준 자는 상한다’, ‘공연한 제사 지내고 어물 값에 쪼들린다’, ‘제사덕에 이밥(쌀밥)이다’ 같은 속담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재’는 음식 제공이 핵심이 아니다. 가르침을 통해 관점의 전환과 공덕을 쌓는 것이 핵심이다. 불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절대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신의 판단이나 붓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구원은 스스로가 선을 쌓아서 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일종의 철학이다. ‘재’의 인도 말은 수포사타(uposadha)인데 이는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목욕재계에서와 같은 의미로, 몸과 마음가짐을 올바로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재’ 의식에는 ‘금강경’을 독송하거나 큰스님 법문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물론 불교의 ‘재’에도 음식을 공양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주림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이다. 사실 불교의 ‘재’에서 음식을 올리게 된 것은 불교가 유교 문화 위에 수용되면서 이것을 넘어서려는 차원에서 ‘재’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즉 유교에서는 음식만 주지만 우리는 음식을 주고 그 위에 가르침도 준다는 식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융합과 접근이 양자의 구분을 더욱 혼란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잘 모르는 분들은 불교의 ‘재’를 불교화한 제사쯤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 실제로 고려 때까지는 사찰에서 제사를 많이 지내고 또 ‘재’도 올리다 보니 이 같은 혼란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유교가 종교로서 기능을 상실한 현대 사회에서는 사찰에서 제사를 모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요즘 사찰에서 제사를 모시는 것은 제사를 불교에 위탁한 것이지 불교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제(祭)’라는 글자는 고기를 나타내는 ‘육달 月’에 고기를 여러 곳에 많이 놓았다는 의미의 ‘또 又’, 그리고 돌아가신 혼령이 와서 본다는 ‘보일 示’로 이루어진다(月+又+示). 인데 이는 유교문화이다.

‘재(齋)’는 삼가서 재계(齋戒)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교의 ‘제사’와 불교의 ‘재’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다만 발음이 같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뿐이다. 유교의 ‘제’를 ‘좨’라는 음으로 발음했다. 그러나 현재는 두 발음을 구분할 수 없고, 또 한자 표기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글자로 이해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양자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님은 원칙적으로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깨달았다면 깨달았으므로 제사가 필요 없고, 깨닫지 못했더라도 윤회했으므로 제사가 헛 제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스님과 관련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추모재(追慕齋)’만 올릴 뿐이다. 이는 문도들을 중심으로 그 스님을 기리는 의미이다.

음력으로 한 해가 바뀌는 설이 다가오고 있다. 세상이 변하여 지금은 형제간에도 제사를 우리문화에 내려오는 아름다운 관습이라고 해석하여 전통을 이어가자는 견해와 제사를 미신숭배사상이라고 부정하는 종교적 견해들이 충돌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낙원과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그냥 헛된 말이 아니다. 관습은 관습대로 인정했으면 한다.

설이 다가오기에 한 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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