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만들기-지키기
자기 만들기-지키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1.0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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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순/경성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사춘기도 아니고 벌써 갱년기가 온 것일까.

나는 최근 들어 '나는 있는가' 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곤 한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타인들이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인 것 같다!" 라고 말하던 순간들부터 나 스스로에게 하는 이러한 질문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나를 사람들은 참으로 잘 정의해 준다. 하지만 그들이 내려주는 모든 정의에 동의할 수는 없다. 아니 의식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돌아보니 나는 사람들이 정의해주는 나의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듯도 하고, (아니 어쩌면)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듯도 하다. 간혹 이례적인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한다. 무엇이 변했다는 것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이제 내가 사람이 되었다고도 한다. 무엇이 사람이 된다는 것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걸로 알기도 한다. 무슨 일이 생겨야만 하는 건가. 또 어떤 사람들은 내게 화를 내기도 한다. 왜 화를 낼까.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일상을 깨는 대상이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늘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나! 그리고 내가 만들어 오던 나!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였던 나는 계속 그런 나로 있어야만 했다. 그러한 내가 아니면 나 자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황해 하며 나 자신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나로 돌려놓으려 했다. 그래, 그것이 익숙함이니까!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를 했다. 거울 속에 내가 너무 낯설다.

그리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 '장근석'이라는 한 연예인이 떠오른다. 그다지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 배우 이름 하나 외우는 데에도 게으른 내게 '장근석'이라는 이름 석 자는 얼마 전서부터 강렬하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우연히 보게 되었던 한 프로그램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은 '장근석'이라는 인물의 최근 동향과 인터뷰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 그 프로그램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 2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어떻게 스스로를 만들고 지켜나가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기존 연예계의 관습에 저항하는, 세상이 만들어 주는 모습이 아닌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생겨나는 긍정과 부정의 시각에 동요하지 않는, 깊은 반성과 피나는 노력들을 통해 서서히 꿈을 이루어 나가는, 열심히 사는 그런 친구, 아주 건강한 한 청년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이룬 그의 성공신화가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직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깊은 병이 들 수 있는 연예계라는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몸을 너무도 잘 들여다보고 있는 그가 부러웠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지켜내려는 투쟁과 저항이 지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한 연예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장근석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우연'인 것 같다. 우연히 보게 된 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장근석'을 알게 되고, 그 우연은 나를 '나'와 관련된 여러 질문들과 만나게 해 주고, 그러한 우연을 생각하다가 건강한 한 젊은이의 삶이 너무도 감사해서, 그리고 낯선 나를 익숙하지 않다고 내 스스로가 부인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 그럴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우연히도 이 글을 쓴다.

문득 홍상수의 '북촌방향'중 주인공 남자가 '우연'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열심히 설명하던 꽤나 길었던 장면과 대사가 떠오른다. 그 남자가 말하는 우연은 이러했다. 우리는 한 결과와 연결되어 있을 법한 수많은 원인들을 생각해 보지만 결국 그 원인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연'에서 비롯된다. 이 글 안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우연'이 감사하다. 그리고 이 긁을 읽게 될 누군가와의 우연한 만남이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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