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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노자에 대한 단상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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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6  18: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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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노자에 대한 단상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에 나가 인문학 코너의 책들을 구경했는데, 좀 뜻밖에 노자에 관한 책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도대체 뭐가 캐캐묵은 그에 대한 이런 꾸준한 관심을 유발하는 걸까. 하기야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훌륭한 선은 물과 같다)니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찬다)이니 하는 말이 거기 나오니 그것만으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한권을 집어들고 그 책장을 넘기다 보니 아득한 40여년 전 그걸 처음 읽으며 묘한 매력에 빠져들던 학창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들과 사보는 사람들은 이 노자라는 사람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는 한 이 노자라는 책은 절대 쉽지가 않다. 진열대의 몇권을 대충 읽어봤더니,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워낙 옛날 책인데다 그 말들도 거의 대부분 수수께끼 같아서 곧바로 그 의미가 읽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게 기호도 암호도 아닌 이상,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어떤 것’은 분명히 정해져 있을 터. 그러니 ‘해석은 자유’라는 말로 그것과 거리가 있는 내용이 그의 말처럼 유포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해석의 폭’은 필요하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노자 자신의 본의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읽는 사람의 의무다. 그건 오직 ‘문맥’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말’의 문맥과 ‘삶’의 문맥, 두 가지 다다. 서양철학적으로, 즉 해석학적으로 말하자면 쓴 ‘그’의 문제지평과 읽는 ‘나’의 문제지평을 융화시키는 ‘지평융화’로서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나의 문제’에 견주어 ‘그의 문제’를 짐작하는 것이다. 그래야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말들을 어떤 진지한 혹은 절박한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무릇 텍스트에는 ‘물음과 대답의 논리’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를 간파해서 얻어낸 이해가 맞는지 틀린지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해석자도 독자도, 아닌 것을 맞다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다. 결국은 이성이 판정할 밖에. 해석을 가지고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는 없다. 해석의 정당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고 삶이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노자읽기에는 어떤 주의가 필요할까. 나는 일단 통찰의 미약, 균형의 부재, 시각의 협소, 확인의 소홀, 그런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낀다. 노자를 읽을 때는 최소한 형이상학적 시선과 윤리학적 시선과 정치철학적 시선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에만 치우쳐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엉뚱한 해석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내가 보기에 노자의 가장 큰 특징은 만유의 근본질서 즉 도에 대한 통찰이라는 ‘이론철학’과 그것에 내재된 의미를 읽어내서 인간의 자기이해 내지 자기수양에 적용하고 세상의 통치에 참고하는 혹은 준거로 삼는 ‘실천철학’이 하나의 틀 안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적용, 나쁘게 말하면 비약이다. 자연과 인간이 곧바로 연결되는 이런 철학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그게 매력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그런 노자의 매력을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좀 제대로 전달해줄 필요성을 느낀다. 노자의 철학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고 또한 필요하다. 중국이다? 고대다?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말한 도도 자연도 사람도 다스림도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도 ‘덕’도 사람들의 안중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중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철학자의 말은 그런 ‘문제’에서 비롯된다. 노자의 말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말’이 갖는 그런 의미부터 이해해야 노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노자와의 기나긴 대화를 하나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인문학의 부활을 꿈꾸면서. 이 건조한 시대를 염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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