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글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칼럼-글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14 18: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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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글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삶에 지쳐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웃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칠순 노인 9대독자 생남한 기분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연기법 차원에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릴 적부터 대인관계 교육을 강화해 나가자.

모든 일은 시작이 좋아야 결과도 좋다. 자신의 미래를 위한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필자는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참 무식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도 첫 아기에 단산하듯, 일생에 딱 한번, 이 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쓰고 있다. 글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아무리 어두운 곳도 등불만 켜면 그 순간 어둠이 사라지듯, 내가 쓴 글들이 하나의 등불 되어 무한한 ‘무진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이 나를 성장시키고, 담금질 하는 스승이자 도량으로 감사한다.

지혜(智慧)의 문은 지해(知解)로는 열 수 없다. 지해는 소금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만 더해간다. 지혜는 자신을 비우고 맑히는 데서 나온다. 천리 준마도 쥐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듯이 사람마다 각각의 재주가 있으니, 그 재주들을 마음껏 발휘해가며 살아가야한다.

우리는 그저 잠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만큼만 이 공간에 머물다 떠나게 될 존재들이다.

내가 앉자 있는 이 자리도 과거에는 짐승들이 살았거나, 선조들의 무덤 자리일 수도 있다.

기껏해야 과거의 무덤자리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몸부림치며 겪는 비극들은 좀 더 많이 소유하다가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이 상속해주고자 하는 어리석음과 집착에서 온다.

저 초목들이 제 살던 자리를 상속하겠다며 집착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소유물을 자식들에게 상속해주려는 욕심에서 다툼과 불행을 겪으며 살아간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젊은 부모가 자녀교육이 서툴면 경험 많은 조부모가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잘해주었지만, 지금의 핵가족 문화에서는 중간 조정자가 없어져버렸다.

그러다보니 젊은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청국장은 장이 아니다.

거적문은 문도 아니다. 못된 부모는 부모가 아니다. 자녀학대는 자녀도, 그 부모도 결국 망하게 된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도 가정교육 부재와 민주적 리더십 부재에 있다.

경기침체와 경제적 불평등, 갑질사회, 이런 것들도 잘못된 교육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교육의 부재에서 발생하여 도덕성 후퇴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집경(大集經)’에서는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때 길을 잃은 중생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며, 길 위의 기와와 돌멩이 가시덤불을 제거하며, 건너야할 물이나 험한 곳에 다리를 놓으며, 어두운 곳을 위해 등불을 단다”하였다. 너나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자.

그래야 상대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이 열린다. 지식을 넓혀 가는 데는 책만 한 것이 없고, 책을 떠난 지식이란 있을 수가 없다. “오는 인연 막지 말고 가는 인연 잡지 말라”, “먹는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더 얹으면 된다”이런 말들이 있다. 내 자리가 좀 좁아지고 내 몫의 음식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가자는 가르침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고,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교육이다.

요즘은 사람보다 부귀권력을 우선하다보니 세포가 경직되어 서로에게 상처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시급하게 사회통합 교육을 서둘러서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해 나가야만 평화가 온다.

죽일 것처럼 서로 싸우지 말자. 자신을 바로 보고 바로알라. 당신도 잠시 허락된 시간만큼만, 이 땅에 머물다 떠날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탕탕 무애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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