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태안 해변을 다녀와서
도민칼럼-태안 해변을 다녀와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16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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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태안 해변을 다녀와서


지난 2월 10일부터 2박 3일간 충남 태안반도 해변에서 겨울 바다 정취를 듬뿍 안고 돌아왔다. 떠나기 며칠 전 태안읍 내에 사는 막내처남이 음력 정월 대보름날 썰물 현상이 현격(懸隔)하여 해삼, 낚지, 조개 등 해산물 채취하기가 좋다며, 자기 누나에게 놀러 오라는 전화가 왔던 모양이다. 나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전화를 받은 집사람이 대구에 사는 처형 내외가 간다면서 함께 가자고 졸라 따라 나서게 되었다. 출발 당일 오전 중요한 회의가 있어 점심 후 2시경 출발하였는데 거의 6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생전 처음 와 본 이곳 풍경은 내가 사는 산골과는 너무 달라 마치 이국에 온 것처럼 낯설었다.

태안읍 소재지에서 바다가 직접 보이지는 않았지만, 갯내음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넓은 농지 속에 봉곳봉곳 얕게 솟아있는 산들은 쉽게 개간만 하면 바로 농지가 될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 고장 풍물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내일 해변으로 나갈 준비를 대충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9시경 집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신진도 해변으로 갔다. 신진도는 태안읍과 인접한 제법 큰 섬인데, 지금은 육지와 연결한 교량이 놓여 있어 공장도 들어서 있고 작은 마을도 있었다. 10시가 채 안 된 시간인데도 벌써 바닷물이 상당히 빠져나가 마을 주변 물 빠진 갯벌에는 작은 배들이 이리저리 누워 있었다. 배는 항상 물 위에 떠다니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물 빠진 해변에 꼼짝 못 하고 누워 물이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물이 없으면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해변 도로를 지나면서 바다를 보거나 때로는 관광도 하였지만, 이렇게 물 빠진 바다 풍경을 자세히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마을 앞 갯벌 옆을 지나 작은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바로 눈앞에 망망대해의 넓은 바다가 펼쳐졌고, 금방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물기를 품은 채 엉켜 너덜겅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긴 장화와 고무장갑을 끼고, 나무자루에 박힌 쇠갈퀴와 2ℓ들이 깡통 하나씩을 들고 돌너덜로 들어갔다. 해삼과 낙지, 조개, 바지락, 고등 같은 해산물들이 미쳐 물 따라 나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기어 다니거나 돌에 붙어 있어 닥치는 대로 잡아넣었다. 처음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막상 들어가 잡아보니 너무 재미가 있어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돌아다녔다. 평소 바다에 대해 얕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바다 밑에 이렇게 온갖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부들이 왜 풍랑의 위험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삶의 터전으로 지키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한참 돌너덜을 헤집고 있을 때 바로 옆에 갈매기 서너 마리가 언제 날아왔는지 돌 속으로 고개를 넣었다 뺐다 하며 먹이를 주워 먹다가 가끔 나를 쳐다보며 까르륵까르륵 울기도 했다. 마치 자기들의 먹이를 왜 훔쳐 가느냐며 항의하는 것 같았다. 필자가 옆에 있는 처남에게 그런 말을 하였더니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었다. “갈매기가 큰 조개나 바지락을 잡으면 바로 까먹지를 못해 그것을 물고 제법 높이 날아 올라가 돌 위에 떨어뜨려 쪼개지면 그 속 알맹이를 주워 먹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을 떨어뜨린 놈이 미처 내려오기 전에 옆에 있던 놈이 먼저 주워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이나 동물들이나 얌체 같은 놈들이 있구나 싶었다.

한참을 헤집고 있는데 밀물이 들어온다고 해 아쉬움을 남긴 채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같은 종끼리 분류를 하면서 조개나 고등은 내일 잡는 것과 함께 처리하기로 하고, 해삼만 바로 장만하여 맛있게 먹었다. 싱싱하고 오독오독 씹히는 것이 정말 맛도 좋았지만, 직접 잡은 것이라 그런지 사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분류 과정에서 내가 잡은 조개와 고등 대부분은 너무 작아서 삶아 먹기가 어렵다며 내일 바다에 나갈 때 모두 가져가 놓아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게 작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평소 뭐든지 필요 없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버리기가 일수였는데, 역시 바닷가 주민들은 수자원을 아끼는 마음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모두 잠시 쉬었다가 인근 식당으로 가서 생선회와 여러 가지 수산물 요리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는 모두 거실에 모여 앉아 오전에 있었던 무용담과 고스톱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은 어제 갔던 곳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만대항 인근 바다로 나갔다. 자동차로 약 40여 분을 달려 해변에 당도했다. 심한 해풍에도 꿋꿋이 잘 자란 푸른 소나무가 늠름하게 둘러 서 있는 이곳의 풍치는 어제 그곳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해변에 도착하니 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제법 큰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 일대에 크고 작은 돌너덜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수억 년 동안 바닷물에 부대끼며 닳아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어제 그곳과 전혀 다른 모습은 바위마다 굴 껍데기와 생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생굴을 즉석에서 따 먹을 수 있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해삼이나 낚지 등 해산물이 별로 없었다. 해변마다 사는 생물들의 종류도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빈 깡통에 예쁜 잔돌 몇 개만 주워 담고 해변의 절경만 구경하고 있다가 돌아올 무렵에야 바위에 같은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붙어 있는 고등과 바지락을 알아보고 조금 따올 수 있어서 체면치레는 되었다.

아마 지금은, 썰물이 나간 갯벌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배들은 만경창파에 어부들의 콧노래와 함께 고기를 잡고 있겠지! 그리고 나를 원망하던 하얀 갈매기들은 신나게 그 위를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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