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해는 뜬다
그래도 해는 뜬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1.1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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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옥/작가ㆍ약사
어느 해 여름인가 동해안의 한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벼른 적이 있습니다. 새벽 검고 푸른 어둠속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해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해가 뜬다던 시간이 되었지만 수평선 위로 운무만 가득할 뿐 해가 떴는지 아침이 밝았는지 사람의 눈으로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곧 이어 빗방울까지 듣기 시작했죠. 다들 난감해 할 때 누군가 외쳤습니다.

“오늘 해 안 떠요”

실망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바닷가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오늘 해 안 뜬다네”

“오늘 해돋이는 망쳤군. 아침이나 먹으러 가지”

거짓말입니다. 해가 안 뜨다니요! 해는 매일 우리 곁으로 와 세상을 비춥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법정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던 갈릴레이처럼 나는 ‘해는 분명히 떴어요’를 속으로 외치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새해 아침에도 해가 떴습니다. 도시의 빌딩 사이 그리고 높은 산과 너른 바닷가에서 어둠을 뚫고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조금 다른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새해 아침은 늘,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높으신 분들이 호국영령들께 새해인사를 하러 몰려오기 때문이지요. 후손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던질 수 있었던 분들이 잠든 그곳에서 그들이 과연 무엇을 다짐하고 무엇을 고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충원은 언론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럴 때 그들이 평범한 국민들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런 비현실적인 생각을 합니다. 새해는 밝았지만 올해도 팍팍한 삶은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우려와 불안이 영하 10도를 넘는 추위에 떨림을 더하게 하는 첫날이었죠. 이런 날 높으신 분들이 기사 딸린 안락한 자가용을 두고, 단체로 버스로 움직이거나 전철(9호선이 개통되어 이제 바로 코앞에 닿습니다)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쇼’이겠으나 그래도 시사해주는 바가 있지 않았을까요. 소통이 안 된다고 허구한 날 소통 타령을 하면서도 그렇게 모를까 싶네요. 해도 뜨기 전 그렇게 이른 새벽 느닷없이 혼잡해진 동작동 현충원 삼거리에서, 검은 세단들에 꼬리를 물린 시민의 차들이 오고가도 못하는 광경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그날 새해 일출을 보러 온(실은 늘 그곳에서 산책을 하며 아침을 시작하곤 했던)  선량한 시민들은 졸지에 수상한 ‘요주의인물’(유명인사의 참배가 예정된 현충문을 내려다보는 곳이 가장 좋은 일출 뷰포인트인 덕분에)이 되어 접근금지, 감시를 받았습니다. 모두들 멀찍이서 간신히 해돋이를 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산했습니다. 이 소박하고 경건한 아침 산책로를 저들이 무슨 권리로 빼앗나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린 매일 호국영령에 감사하고, 경건하게 삶을 돌아보며, 묵묵히 열심히 살고 있네 이 사람들아’ 하면서 말이죠.

올해는 더 이상,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인 해를 뜨지 않았다고 우긴 바닷가의 그 누군가처럼 빤한 거짓말로 가뜩이나 지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선동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러고 보니 19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함께 있는 묘한 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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