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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진주 3.1운동의 전개과정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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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2  18: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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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진주 3.1운동의 전개과정

1919년 3월 1일 서울 3.1운동에 참여,목도한 진주항일투사들 김재화·정용길·조웅래·박대업·심두섭 등은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입수해 귀향했다.

진주지역 3.1운동은 3월 13일 시내 5곳에서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시위를 전개키로 했으나 그 당시 일본 순사로 재직중인 2명이 주동자로 참여해 3월 13일은 경계가 엄중하니 3월 18일로 하자고 수정제안해 5일간 뒤로 연기됐다.

귀향한 이들은 집현면 하촌리 김재화 자택에 모여 시위방향을 논의하고 김재화 선생은 개인적으로 <교유문>을 작성해 3월 10일부터 사방에 배포했다. 한편 기독교계 광림학교 악대원 김영조. 이영규. 천명옥. 박성오 등이 대고(큰북), 소고(작은북), 코르넷, 나팔을 불면서 시위대 선두에서 시위하기로 결정했으나 졸업생이기 때문에 악기 소재를 몰라 3월 18일이 아니고 3월 19일 시위 둘째 날 11시경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대구복심법원 판결문>과 <대구감옥 집행지휘서>, <고등경찰관계적록>에 보면 김재화 자택에서 이강우·강달영·박진환·심두섭·박대업 등이 모여 거사일과 거사과정을 논의했으며 악대원들이 동참한 시기를 1919년 3월 18일 첫날이 아니고 3월 19일 오전 11시로 시간까지 명시했다.

각 분야 담당자를 정하고 진주 봉래동에 소재한 진주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시내 5곳에서 일제히 시위를 전개했다.

김재화 선생은 총지휘자로 지목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혼절하자 석방되었고 17일 만에 순국했다. 권채근 선생은 아우와 함께 1916년 한일합방 반대운동을 전개하다 6개월간 옥고를 치른 전과 때문에 혹독한 고문으로 감옥에서 순국했다.

박진환·정준교·심두섭 선생은 천전동에서 <독립선언서>3천장을 등사하고 시위를 지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강달영 선생은 3년형이 언도되었고 출옥 후 사회주의 활동으로 6년형이 언도되었으나 공적조서의 잘못으로 가장 낮은 훈장이 추서됐다.

자택에서 태극기를 제작·배포한 정용길 선생은 1년 6월형, 박용근 선생은 2년형, 광복 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강우 선생은 1년 6월형이 언도됐다. 장덕익·정몽석·최웅림·한규상 선생 등은 1년형이 확정되었다.

3월 19일 낮 11시에 악기를 동원한 이영규·박성오·천명옥·김영조 선생 등은 6개월형이 확정됐으나 김영조 외 3명은 지금까지 미포상이다. 정부는 신속하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해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기 때문에 청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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