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졸업식
아침을열며-졸업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26 17: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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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하동 화개초 교장·시조시인·아동문학가

김용진/하동 화개초 교장·시조시인·아동문학가-졸업식


해마다 이월이면 학교마다 졸업 때문에 바쁘다. 졸업식 준비에다가 졸업식이 끝나면 생활지도까지 신경을 써야하고, 또한 나름대로 졸업식을 색다르게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서 아이디어를 짜 내기도 하였다. 나는 벌써 이 학교에서 3번째 맞는 졸업식을 선생님과 준비하여 진행 하였다. 한 해에 2번씩 졸업식 행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물론 선생님들이 모든 것을 준비하기 때문에 더 힘들겠지만…. 그러고 보니 교직생활 36여년이 되었으니 내가 졸업하는 것을 빼고도 36번의 졸업식을 치러온 것이 된다. 졸업식이 그동안에 많이도 변했다.

내가 처음으로 6학년을 맡아서 졸업을 시킨 것은 1984학년도이다. 벌써 33년 전의 일이다. 학년마다 1학급씩 전 학년이 6학급으로 되어 있는 조그마한 학교였었는데 그 반에는 어떻게 하다가 입학을 놓치고 동생과 함께 6년 동안 공부하고 졸업을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동생은 남학생이었는데 둘이다 덩치는 지금으로 보면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컸었던 걸로 기억된다. 둘이다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누나만 중학교에 진학을 못하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졸업식을 앞둔 예행연습에서 누나가 눈물을 많이 흘렸었다. 나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가슴이 울컥했었다. 그리고 그 때만해도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되는 것이 흔했다. 특히 송사와 답사를 할 때면 답사를 읽는 졸업생이 울먹이면 덩달아 모든 졸업생들과 재학생들도 울어서 온통 흐느끼는 소리가 졸업식장을 메웠었다. 그 때의 아이들은 지금은 자라 성인이 되어서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 있을 텐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2015학년도 졸업식, 그러니까 내가 이 학교에 부임을 하고 나서 2번째 맞이한 작년의 이맘때의 졸업식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이 초등학교 때의 전 선생님과 학부모님 그리고 후배들과 지역사회의 선배들의 축하메시지를 텔레비전에 띄웠었다. 예년의 송사와 답사 대신이었다. 또한 엄숙한 면보다 축하의 장이 되기 위해서 재학생들의 축하 기타 연주와 졸업생들의 답장인 기타연주, 함께 하는 연주로 졸업식을 했었다. 물론 올해에도 비슷한 형태의 졸업식을 준비해서 본교는 어울림의 축제장으로 만들었고, 분교는 졸업생 수가 적기 때문에 학예회와 함께 하였다. 부모님과 졸업생 그리고 재학생이 꾸미는 졸업의 축하장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6년 동안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초등학교에서의 정들었던 선생님과 후배 그리고 학교를 되돌아보며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날이 되는 것이다. 옛날의 졸업식에다가 오늘날의 시대 흐름을 반영한 졸업식을 준비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보면서 미래에는 어떤 형태의 졸업식이 거행될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가 한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을 되새기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3년간의 한 학교생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의 졸업식도 이제는 이별의 아픔보다는 새로운 출발의 장이 되기 위해서 서로들 축하하고 다짐하며 먼 훗날을 기약하는 멋진 장으로 만들 테지만 말이다.

더 먼 과거로 되새겨보면 나의 초등학교 때의 졸업식은 기억에 별로 남는 것이 없다. 그 때만 해도 졸업을 하고 나면 중학교에 진학을 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과 그래서 인지 더 눈물이 많았다는 것 말고는…

졸업을 하는 학생들에게 기억에 남는 말을 아주 짧게 2가지 정도만 하였는데 과연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미래를 축복하면서 한 말이기 때문에 몇몇의 아이들에겐 좋은 안내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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