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故)정주영회장의 리더십과 필자의 인생관
도민칼럼-(故)정주영회장의 리더십과 필자의 인생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27 18: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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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창원시 참사랑봉사회 회장

권영수/창원시 참사랑봉사회 회장-(故)정주영회장의 리더십과 필자의 인생관


우리나라 최고 경영인을 대표하는 사람중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故) 정주영 회장일 것이다. 정회장은 불굴의 초인적인 기업가 정신(起業家精神)으로 세계인들까지 경제대통령(經濟大統領) 감이란 표상의 인물로 화자 되고 있다. 그의 자서전 어록 중에서 심금을 울리게 했던 말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것이다. 정회장이 발 빠른 기질과 리더십을 발휘해 사업의 기반를 잡게 된 두 가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적어본다. 1953년 겨울 주한 미군으로 부터 유엔군 묘지의 잔디 공사 수주를 받았을 때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한겨울에 새파란 잔디가 전국 어디에서도 구할 수 가 없는 일이다. 정회장은 생각 끝에 잔디 대신 청보리 싹을 가져다 심어 약속을 지켰다. 봄에 다시 잔디를 입혀 주한미군의 큰 신뢰를 쌓았던 것이다.

또 한가지는 1971년 박정히 대통령 정권 초임때 현대조선소 설립당시 건설비용이 그의 바닥인 상태에서 영국(英國)으로 건너갔다 차관(借款)에 대해 말을 꺼내자 마자 바로 거절당하자 거북선이 그려진 500짜리 지폐 한장을 내보이면서 대한민국은 이미 500년전 임진 왜란때 부터 거북선(철갑선)을 건조해 승리를 이끌어 왔다고 끈질기게 설득시켰다. 단돈 500원으로 담보를 잡아 영국은행 차관을 얻어 현대조선을 건립한 것은 세계적인 역사에서도 처음있는 일이다.

필자가 당시 정주영 회장과의 두번의 짧은 인연이 있었다. 한번은 정회장께서 대선출마 당시 마산에 내려와 비서진에서 필자를 꼭 한번 만나자고 했다. 필자의 두손을 꼭 잡으며 도와 달라며 추후 입당을 까지 보장 했지만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며 두번이나 거절 했었다. 그 이후 정회장을 두 번째 만나게 된것은 경남지역 시·도에서 필자를 모범인 선행 표창 대상자로 추천해 현대아산 복지대상(現代 峨山福支大賞)에 선정 되었다며 축하 통보가 왔다. 큰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표창을 거부 했지만 안된다는 말에 결국 본사에 올라가 정회장님을 만나뵙고 표창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필자가 정회장의 권유에 따라 정계에 입문했더라면 제대로 정치를 해 나갔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진다.

필자가 아주 어린 나이에 도정정신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을 적어 본다. 시골에서 아버지와 형님께서 논을 담보로 잡아 농협구판장을 인수하여 운영해왔다. 처음엔 장사가 어느정도 되는듯 하다가 2년이 조금 못돼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필자는 그 당시 10~11살 정도의 어린 나이지만 나름대로 터득한 상술로 나의 개인적으로 장사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면지역 시장 도매상 가계를 찾아갔다. 저가 장사를 할러고 하니 돈은 없고 물건을 팔아서 나중에 돈을 드리면 안되겠냐고 사정을 했더니 무엇을 믿고 물건을 주냐고 했다. 저가 비록 어린나이지만 장사는 돈을 버는것도 중요하지만 신용을 버는 것이라는 편지를 써서 주었더니 어린것이 아주 기특하다며 승낙을 해주었다. 집에서 약 1년 반 정도 장사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장사가 너무 잘되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곤 했다.

필자는 그길로 졸업을 하고 바로 어머니의 손을 놓고 집을 뛰쳐나왔다. 부산에서 식당 배달로 시작해 국제시장(지난번 영화촬영지 꽃분이가게 부근) 잡화점가게에서 점원을 거쳐 노점상 장사치기를 시작했다. 그 당시 모 방송사 라디오 방송국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교를 못가는 청소년 생활 수기 공모를 한다는 얘기를 방송을 듣고 나의 인생관에 대한 글을 써서 보낸것이 운이 좋아서 인지 필자가 전국에서 장원(壯元)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 상금을 받아 고아원에 절반을 기부를 했더니 방송에 전파되어 모학교에서 학비를 일부 면제를 해주겠다며 찾아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필자가 어린나이에 집에서 장사를 시작하고 근 50년 가까이 타향객지에서 장사치기와 직장생활을 통해 돈을 어느정도 벌었지만 남들과 같이 재산을 제대로 늘리지는 못했다. 그것은 장사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벌인만큼 사회를 위해 헌납하여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따라 간혹 새로운 창업을 시작하는 분들이 필자에게 자문을 구해 올때면 이런 말을 해주기도 한다. 사업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을 버는 것부터 배워라고 알려준다. 이는 조선시대 말단의 점원에서 시작하여 조선팔도 거상을 이룬 임상옥 도방(道房)의 가르침이다. 이를 보고 대다수 사람들은 조선시대와 지금은 초고속시대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한 것은 상도(商道)지켜 가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임상옥 도방의 가르침과 정주영회장의 리더십을 되새기며 그것을 지표를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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