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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백만명 통곡소리 국정 교과서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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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1  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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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백만명 통곡소리 국정 교과서

교육부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발표하자 역사학자들, 교수들, 교사들, 향토사학자들이 잘못된 내용 수 백 곳을 찾아냈다. 교육부는 또다시 검토해 1월 31일 최종본이라 발표하며 연구학교를 지정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최종본 역시 650여 곳에 잘못된 내용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반인들은 생각에 잠긴다. 전공 교수들이 만들었다면서 왜 어찌하여 잘못된 내용이 650곳이나 될까. 의구심이 들고 자괴감이 생긴다.

한 두 곳도 아니고 수 백 곳이 잘못되어 농촌의 필부 또는 향토사학자 개인이 만든 책보다 틀리거나 잘못된 부문이 많다고 하니 한심하고 통탄스런 일이다. 어안이 벙벙하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해마다 교수들이 대입 문제를 출제할 때 마다 잘못된 내용이 나오고 “복수답이다. 잘못된 답이다” 라고 발표할 때 울화통이 나고 울분이 발동한다.

차라리 지역 향토사학자들에게 맡기면 철저한 고증으로 완벽한 역사책을 만들 것이다. 교수님이 아닌 신채호 선생, 안확 선생, 백당 현채 선생, 매헌 황현 선생, 창강 김택영 선생, 안정복 선생, 계연수 선생 등이 확실하고 분명한 역사서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1895년 10월부터 1945년 8월 까지 확인된 항일투사들이 9만명이 넘었고 정부포상을 받은 분은 약 2만명에 이른다.

이들 항일투사들과 후손들 100만명이 통곡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당시 국무총리는 이범석(청산리 승전, 광복군 참모장, 연성대장)장군이다. 대한민국 관보 1호에 대한민국 30년이라 명기했고 초대 대통령 취임식장에도 대한민국 30년이라 명시했다.

대한민국 국호는 1919년 4월 10일 오전 10시 10분경 상해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신석우(申錫雨) 선생이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했고 여운형(呂運亨) 선생은 대한은 망했으니 고구려. 신라. 고려 등으로 하자 했으나 대한에서 망했으니 대한에서 흥해보자고 설명해 다수결(多數決)로 통과됐다. 그 당시 회의록(會議錄)이 실존한다.
현재 헌법 전문에 3·1운동 정신과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했으니 교육부의 역사책은 헌법 정신을 위반하고 헌법을 심대하게 위반했음이 확실하다.

1907년경 모 신문기사에 대한민국 국호사용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대한제국 시대이기 때문에 기고자가 착각해 잘못 쓴 것이 확실하다.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확실하며 대한민국 탄생이 아니다.

항일투사 9만여 명과 정부포상자 약 2만명, 후손들까지 백만 여명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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