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정유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도민칼럼-정유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12 18: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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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정유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여명이 밝아 오는 이른 아침이다. 오늘도 황강 변 체육공원으로 아침 운동을 나갔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절기로는 우수 경칩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하의 찬바람이 온몸을 엄습해 온다. 강 건너 산 너머에서 둥글고 찬란한 해가 밤의 고요를 밀어내고 오늘도 어김없이 밝게 떠오른다.

찬란한 햇빛이 유유히 흐르는 황강 물 위를 가로질러 황홀한 다리를 놓는다. 물결 따라 만들어지는 수많은 은빛 반짝임에 눈이 시리다. 강 가운데 뒤처진 한 무리의 겨울 철새들이 떠나갈 채비로 분주하다. 까르륵 꽥꽥 까르륵 꽥꽥 나에게도 내년에 다시 보자며 작별의 인사를 한다. 강변에 늘어선 작은 수양버들과 마른 갈대숲에서는 서걱서걱 갈대의 춤사위 속에 쪼르록 쪼르록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뭇가지는 은은한 연둣빛으로 변해간다.

이제 곧 온 산야에는 연초록 풀잎들이 그윽한 새봄 향기를 풍기며 손짓하고 온갖 꽃들이 우리를 유혹할 것이며,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새들은 창공을 신나게 날며 자지러지게 노래할 것이다. 솔직히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희망찬 새봄이 마냥 즐겁지만 않을 때가 있다. 화려한 자연에 마음이 들뜰 때면, 가끔 인생을 4계절에 비유해 보곤 하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가 되어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20세까지를 봄으로, 그다음 40세까지를 여름으로, 또 그다음 60세까지를 가을로. 그 이후를 겨울로 생각하면서 일흔에 들어선 필자는 어느덧 겨울의 중턱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대자연은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면 푸르름으로 온 강산을 수놓지만, 인생의 겨울에는 다시 봄이 올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아쉬움과 허망함 등 복잡한 심경이 흐른다. 때로는 수만 년 아니 수억 년을 끓임 없이 유유히 흐르는 황강이, 그리고 오고 가기를 반복하는 계절의 대자연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아쉬움은 잠시이고, 한편으로는 하느님이 만든 자연의 섭리가 너무나 잘 된 조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생명체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고 왔다가 가는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만일 생명체가 생로병사의 과정 없이 무한으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탄핵을 맞고 정국이 어수선한 올봄의 길목은 밝고 화려함의 기대보다도 정치인들에 대한 배신감과 허탈감으로 마음이 아프다. 몇 가지 내 마음을 추스를 글귀들을 떠올려본다.

먼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 졌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이 글귀는 다윗왕이 세공인을 불러놓고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고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절대 좌절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세공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반지에 새길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의 왕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여 얻은 글귀라고 한다. 그렇다. 이보다 더한 진리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즐겁고 슬픈 일도 모두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다. 그러므로 현실에 너무 목메지 말고 세월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음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영국 극작가 버나드쇼 묘비명을 생각한다. 이 세상 인간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묘비명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성공하고 잘 사는 사람도 항상 또 다른 목표가 만들어지고, 그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한 채 임종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그분의 묘비명이 그럴진대 필자 같은 사람이야 그야말로 한평생을 우물쭈물 살다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묘비명이 나에게도 꼭 적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며칠 전 어느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귀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해병 중장으로 돌아가신 이동룡 님의 묘비명도 너무나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혹시 조국이 위태로워 나를 부르거든 즉시 깨워다오, 내 다시 일어나 총을 들리라!” 이 얼마나 애국심과 군인정신이 투철한 장군이었나 싶어 읽고 또 읽으며, 한없는 존경을 보내며 명복을 빌었다.

정유년 새봄의 길목에 와 있지만, 국민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고 오직 정권야욕에만 눈이 멀어 설쳐대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그야말로 올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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