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농업 경남에서 시작 전국으로 확산시켜
벤처농업 경남에서 시작 전국으로 확산시켜
  • 대담 및 정리 / 황인태 본지 회장
  • 승인 2017.03.13 18:28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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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농업기술원 이상대 원장

▲ 이상대 경남농업기술원 원장은 앞으로 농업이 스마트 농업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망 좋은 산업분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용규기자
이상대 경남농업기술원 원장은 울산에서 언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과 인연을 맺었다. 울산에 있는 농촌지도직으로 근무하다가 연구직으로 전환되면서 농업기술원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원에서는 주로 농산가공 분야의 연구를 담당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부가가치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 농산물 가공센터를 짓는 등 농산가공의 개념을 농민들에게 보급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벤처농업을 경남농업기술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시키기도 했다.

이 원장은 지금 30대들이 농업시장에 들어오면 20년 후에는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고 다닐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원장은 그만큼 농업의 미래에 대해 자신하고 있다. 이 원장이 농업분야에 들어 온 후 우리나라 농업은 쌀 자급 운동인 녹색혁명과 비닐하우스 확산인 백색혁명을 완성했다. 이제 우리나라 농업은 스마트 농업혁명의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지금 농촌의 주력세대인 70대들이 퇴장하고 나면 우리나라 농업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이 퇴장하고 나면 우리나라 농업은 스마트 농업으로 전환되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될 거라는 게 이 원장의 전망이다.

3년 후면 퇴직하여 자신의 고향인 울산에 가서 농사를 직접 지을 계획이라는 이 원장은 귀농귀촌에 대해서도 도시에서 쌓은 경험을 농업에서 발휘하면 퇴직이후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사를 만만히 보아서 쉽게 시작하다 보니 실패를 하게 된다고 분석하고 있는 이 원장은 도시에서 하는 정도의 열정을 쏟는다면 농촌에서 성공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도시에서 창업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전문가를 찾아서 컨설팅을 받고 준비를 한다면 귀농 귀촌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게 이 원장의 지론이다.  이상대 원장과의 대담은 본지 황인태 회장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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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스마트 농업혁명 전환 부가가치 높은 산업으로 변화
지금 30대가 농업에 들어오면 20년 후 가장 성공한 사람될 것
원장에서 퇴직하면 고향 울산에 가서 농사일 하면서 지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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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대 경남농업기술원 원장은 경상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는 등 평생을 농업연구직으로 지내면서 우리나라에 농산가공의 개념을 도입시킨 사람이다.
대담 및 정리 / 황인태 본지 회장

-경남농업기술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농업기술원은 농업과 관련한 대부분의 일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서도 농업에 대한 연구, 현장 지도, 농민 교육 등을 주로 하고 있다.

-연구는 주로 어떤 것을 하고 있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비 연구 사업을 공모사업을 통해 실시하고 있다.

-현장 지도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어떤 농작물이 나왔을 때 농가에서는 시범사업을 한다. 시범 사업을 3년 정도 하고 나면 주변농가들이 따라한다. 이를 위해 농업기술원에서는 각 시, 군의 농업기술센터와 공동으로 현장에 나가 농민들을 지도하고 있다.

-경남농업기술원이 지금까지 한 일은 어떤 것들이 있나.
▲녹색혁명을 이루었다. 1980년대에 가장 중요한 농업의 이슈는 쌀 자급이었다. 이를위해 통일벼를 개발했고 이를 농가에 보급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는 쌀에 대해서는 자급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은 녹색혁명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를 통해 주식인 쌀이 자급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그 이후 백색혁명을 이루었다.

-백색혁명은 무엇인가
▲비닐하우스를 통한 시설재배 확산을 말한다.

-백색혁명도 의미 있는 일인가
▲그렇다. 백색혁명이 있었기에 우리 농산물의 해외수출이 가능하게 됐다. 지금 경남은 농산물 수출에 있어 전국 1위이다. 이것이 백색혁명이 완수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비닐하우스, 여기서 더 발전된 유리온실에 의한 농산물 재배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농업기술원은 이 분야에서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민교육은 어떤 것들이 있나
▲새해가 되면 영농설계 교육을 한다. 또 경남 산청에는 산채와 버섯, 합천·창녕에는 양파 등 각 지역특색에 맞는 농민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새로운 영농기술이 만들어지면 이를 농민교육을 통해 확산시키고 있다. 또 전문기술교육도 시키고 있다.

-전문기술교육은 무엇인가
▲농업기술원 내에 ATEC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이는 유리온실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신기술이다. 이 분야에서는 네덜란드가 가장 앞서있는데 네덜란드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여 농민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유리온실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앞으로 가장 유망한 분야이다. 그런데 직접 네덜란드에 가서 교육을 받으려면 연간 수천만 원의 교육비가 든다. 이 시스템을 농업기술원이 그대로 가져오고 또 강사도 네덜란드에서 직접 초빙해 와서 농민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연간 절약되는 교육비만 1000억원에 달한다. 농업기술원에 이 시스템을 도입해 두었기 때문에 농림부에서도 우리 기술원에 위탁교육을 많이 시키고 있다. 현재 교육수요를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경남농업에 대해 얘기해 보자. 경남농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경남농업은 기후가 높기 때문에 신선채소 생산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19년 연속 신선채소 생산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선채소의 메카가 경남이라고 보면 된다. 또 수출도 19년 째 전국 1위이다.

-수출액이 얼마나 되나
▲1억3000만 달러 정도 되는데 주로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미주 등 다양하다.

-주로 어떤 농산물이 수출되나
▲현재 가장 많은 작물은 파프리카이다. 그 다음으로 딸기, 토마토, 버섯류 등의 순이다.

-파프리카는 우리나라 종자인가
▲그렇지 않다. 처음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파프리카는 모두 외래산 종자였다. 최근에 경남농업기술원에서 미니 파프리카를 개발하여 종자등록을 하였다. 미니 파프리카는 크기도 작지만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아서 인기가 좋다. 보통 파프리카 종자 한 알이 금값의 2배에 달한다. 그런데 미니 파프리카 종자는 금값의 4배이다.
 

▲ 진주시 대신로에 위치하고 있는 경남농업기술원 전경
-그 외  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것들은 어떤 것이 있나
▲딸기의 종자 중 하나인 금실, 홍실, 아람 등을 개발하였다. 그 중에서 금실이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서 현재 홍콩에 수출하고 있다.

-경남농업기술원은 언제 설립됐나
▲1908년 진주 종묘장으로 설립이 됐다. 1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진주 종묘장이 진주에 설립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진주가 경상우도의 도부였기 때문이다. 북쪽에는 함흥, 남쪽에는 진주에 종묘장이 설립이 됐다. 진주가 남한 농업의 중심지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진주 농업의 역사와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농업기술원이 한 일 중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새송이 버섯을 개발해 시장을 만든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새송이 버섯은 원래 없던 것을 농업기술원이 만든 것인가
▲그렇다. 원래 없던 종을 만들어 시장까지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현재 새송이 시장이 약 2000억원 정도 된다. 앞에서 얘기한 미니 파프리카도 앞으로 새송이 만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농업기술원이 종자등록을 한 것은 몇 개나 되나
▲247종이다. 그중 화훼가 223종으로 가장 많다.

-농업기술원의 조직은 어떻게 되나
▲특화연구소가 5개 있고 한방약초연구소와 약용자원 종묘보급센타가 있다.

-특화연구소는 무엇인가
▲양파, 단감, 화훼, 사과, 약용자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기관이다.

-약용자원 종묘보급센타는 어떤 곳인가
▲약용작물들의 종묘를 농가에 보급하는 일은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국비지원으로 백도라지 160만수를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이 원장 개인에 대해 얘기해 보자. 어떤 이유로 농업기술원에 오게 됐나
▲저는 울산에 있는 언양교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1980년에 농촌지도직으로 울산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92년도에 경남농업기술원에 농업연구직으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됐다.

-연구직으로 있으면서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주로 농산가공에 대한 업무를 했다.

-그게 무언가
▲우리나라 농민들은 농작물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개념이 없었다. 제가 농산가공의 개념을 농민들에게 주입시킨 장본인이다. 농업기술원에 농산물가공센터를 처음 지었다.

-경상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논문이 어떤 분야인가
▲곡물 중에 있는 해충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이 원장이 한 일중 기억에 남는 일은
▲벤처농업을 경남농업기술원에서 처음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시킨 일이다.

-앞으로 벤처농업이 전망이 있나
▲서울대 교수 중 한분이 자신의 딸을 농고를 보내겠다고 말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저는 지금 30대들이 농업시장에 들어오면 20년 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 경남농업기술원은 최첨단유리온실 ATEC시스템을 도입하여 현장중심 맞춤형 실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 농민들이 대부분 70대이다. 이분들이 농업에서 퇴장하고 나면 우리나라 농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고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농업은 근본적으로 스마트 농업이 될 것이다. 스마트 농업이 되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농업시대가 될 것이다. 엄청난 기회가 농업 앞에 놓여있다.

-귀농 귀촌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저는 퇴직자들이 도시에 머물지 말고 농촌으로 가라고 권유한다. 도시에서 쌓은 지식으로 농촌에 가면 돈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 방면의 전문가를 찾아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도시에서 사업을 준비하는 것만큼 준비한다면 농촌이 더 전망이 좋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대부분 농사를 쉽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제 농사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와 정보로 하는 것이다. 

-이 원장은 언제 퇴직하나
▲3년 정도 남았다.

-퇴직하면 농촌으로 갈건가
▲그렇다.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 농사 지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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