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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교훈을 남기고 간 판사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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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0  19: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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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교훈을 남기고 간 판사

1945년 패전한 일본은 극도의 식량난에 시달렸다. 한반도와 만주‧대만에서 수탈하던 식량 공급이 끊어진 데다 해외에 이주했던 자국민이 대거 귀국해 인구마저 늘어난 탓이었다. 맥아더 점령군 사령부는 고육책으로 ‘식량관리법’을 만들어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다. 성인의 하루 배급량을 300그램으로 제한했는데, 300그램은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절 배급량과 같은 극히 적은 양이다.

일본 판사 야마구치 요시타다(山口良忠: 1913∼1947)는 명문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정통 엘리트 법관이었다. 1946년 도쿄 지방법원 경제사범 전담판사로 부임한 그는 곧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주 업무가 식량관리법 위반 사범 재판이었는데, 당시는 배급만으로 연명하기가 워낙 어려워 쌀 암거래가 일반화돼 있었다. 판사와 관료들마저 불법 유통되는 쌀에 의지하는 형편이었다.

암거래 쌀을 먹으면 자신도 법을 어기면서 똑같은 법을 어긴 다른 사람들만 처벌하는 결과가 된다. 야마구치는 부인에게 선언했다. “앞으로 나는 배급 쌀만 먹겠다. 쓰러질지도 모르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양심을 속이며 사는 것보다는 낫다”

그는 그나마 배급 쌀마저 대부분 세 살, 여섯 살 두 자녀 몫으로 돌리고 부인과 함께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척이 사정을 알고 쌀을 보내거나 식사 자리에 초대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1947년 8월 27일 야마구치는 도쿄지방법원을 나오다 청사 계단에서 쓰러졌다. 영양실조였다. 고향 사가현으로 옮겨져 요양에 들어갔으나 10월 11일 결국 사망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소크라테스는 아니지만, 기쁘게 굶어죽을 생각이다” 사무라이 정신인가 가미카제 정신인가? 우리 법조계에는 왜 이런 혼이 살아있는 법조인이 나오지 않을까? 그는 공자가 말하는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이 바르고 사악함이 없이 살다가 간 성인이 아니었던가?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한 사업가는 일 년에 두어 번씩 서울 근교에 있는 벽제 화장장을 들른다고 한다. 친인척이나 지인이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냥 생각나면 무작정 찾아간다고 한다. 아무 관계가 없는 고인과 추모객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이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모습, 서로 위로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한 시간쯤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힘을 왠지 다시 얻게 된다고 한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죽은 자의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몹시 서운하여 부장품이라도 함께 묻어둔다면 산 도둑의 침입으로 유택(幽宅)만 어지러워질 뿐이다. 이 사실만 깨우쳐도 세상 탐욕의 절반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순실 사건, 그가 검찰에 출두 했을 때 신고 입고 걸치고 썼던, 신발‧옷‧가방‧모자들은 일반 서민들은 감히 일생에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할 고급스러운 것들이었으니 더욱더 격세지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만약 필자가 그런 지경의 처지가 되었었다면… 한 쪽 손에는 대 지팡이, 한 쪽 손에는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으면서 소복을 입고 짚신을 신고 출두했을 것이다. 옛날에 아버지 상(喪)을 당하면 대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 상(喪)을 당하면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는다고 했다. 온갖 추악한 짓을 다 동원해서 3천 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고 했으니 과히 뭐라고 해야 할까? 중국의 석학 린위탕(林語堂: 1895∼1976)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인생의 지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데 있다”

그는 검찰에 출두할 때 죽을죄를 지었다고 울부짖으면서 들어갔는데 왜 검사 앞에 가서는 ‘나는 죄가 없다’, ‘나는 모른다’고만 했을까? 일본 판사 야마구치 요시타다가 이 재판을 맡았다면 어떤 형벌을 내렸을까? 5천만 국민의 허탈감은 얼마로 계산해야 할까? 이 사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감옥에서 울었다고 하니 혹시 지금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빨리 나가서 더 큰 것 한탕 해야 할 텐데 하고 꿈을 꾸고 있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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