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경남 서부지역의 국채보상운동
도민칼럼-경남 서부지역의 국채보상운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20 19:1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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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란 일제에 진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으로 전 국민이 3개월간 담배를 끊고 의연금을 모으면 외채를 능히 갚을 수 있다는 뜻을 모은 항일운동(抗日運動)이다.

보상운동은 1907년 2월 동래부 부산항 상인들이 시작하고 대구에서 불 꽃을 피워 본격화되고 언론사가 협력해 전국화. 활성화되었다.

1904년의 고문정치이후 일제는 조선경제를 파탄시킬 목적으로 일제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받아 사용할 것을 강요했고 8차례에 걸쳐 1300만원을 빌려 사용케 했다. 이는 1년간 국가예산을 초과하는 거액이었다.
경남서부지역민 2만4천여 명이 동참하고 전국에서 27만명이 동참한 거대한 개미군단이 형성되었다.

필자가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자료를 10여 년 전부터 수집했었는데 작년 11월 4일 부산 강제동원역사관 6층에서 학술발표를 했고 이어 12월 30일 진주문화원 1층 강당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금년 3월 1일, 2일 KBS1-TV 전국 9시 뉴스를 통해 크게 부각시켰다. 금년에도 각 지역 문화지를 통해 세 차례 논문을 게재하자 곳곳에서 호응해 주었고 기념비를 건립키로 결정했다.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박해령 등이 격문을 통해 ‘2000만 동포여 한 달간 담배를 끊어 담뱃값 20전씩 3개월간 모으면 1000만원 차관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하게 된다.

경남의 도청 소재지 진주에서도 유향소(향교.유도회).예수교(기독계)가 애국 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남녀노소. 종교불문.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십시일반 동참하게 된다.

도청 소재지 진주에서도 국채보상 경남회, 진주애국상채소, 경남보상부인회, 기생조합 등이 있었고 국채보상 경남회는 1907년 3월 9일 취지서가 발표되고 대표 발기인으로 강주제(강주식), 강경호(강상호), 안헌(안확)등이 앞장서고 면우 곽종석 선생은 애국상채소 대표(찬성장)로 추대되고 1907년 3월 12일 진주 중앙요양병원(전 도립병원)에서 안택중, 안효정, 김연배, 김기대, 임병환, 노상직, 김휘돈, 박준성, 강영좌, 하만두, 노상욱, 윤필구 등이 수백 명이 동참했다.

이어 전 군수 윤순백, 전 사과 최동호, 전 감찰 천수현, 이상관, 전자현, 전 주사 서진욱, 전 무과 최의언, 전 참봉 강선호, 정재화, 정경칠 부부, 전 도사 강성원, 전 사과 하윤익, 하기용 등이 2~10원씩 기부했다.

하동군 힁천면 이종란도 의연에 동참하게 되는데 후에 하동청년회관 건립. 남해 충렬사 중건 등을 위해 후원했다. 하동읍 여종엽, 여경엽 형제와 의령 여씨 수십 명이 동참해 많은 의연금을 냈다.

하동읍 객주 김기완, 옥종면의 유림 하재도, 하일노, 정찬영, 정기영, 정수영 등이 동참하고 양보면의 정환중, 하동읍 김홍근 등도 동참했다.

사천 곤양면의 김필원, 이광종 등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하동군 옥종면의 함안 조씨들 조용하, 조용주, 조용진, 조용문, 조용순 등도 의연에 동참했다. 하동군 고전면의 효자 염태섭과 친인척들도 동참해 의연금을 냈다.

고성군 대가면 부호 이상규, 이성규 등도 의연금 50원. 20원씩 각각 의연했다.

하동군 양보면의 경주 김씨 효자로 유명한 김세규도 의연에 동참했다.
산청읍 김은호. 박승봉 등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산청군 단성면의 함안 이씨들 이진훈, 이진보, 이진동, 이상호, 안동 권씨 권재용, 권재표, 권재봉, 권규용 등도 동참했다.

진주 내동면 삼계리 태안 박씨로 통정대부 비서감승 벼슬을 역임한 박주형, 궁내부 주사 박동형 형제가 53원을 내고 박주형의 세 아들 박재호, 박재표, 박재수와 박동형의 아들 박재연도 의연금을 냈다.

부호 정태석도 의연금 23원을 냈고 친인척들(정태일, 정태익, 정경석, 정갑석, 정관석)을 동원해 의연금을 내게 했다. 정태석은 일신여고(진주여고·진주고)설립 발기인으로 수 천만원을 기부하고 남해 충렬사 재건시 후원(1932년)하고 진주성 창렬사 중건회장(1935년)으로 크게 봉사했다.

진주지역 기생들도 경남여성보상회를 조직해 동참했는데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향 20원, 김소사 20원, 도홍 20원, 필향 20원, 봉란 10원, 계향 8원, 향심, 금연 각 6원씩 옥연 5원, 봉희 4원, 부용, 매옥, 옥엽, 진옥 오소사 등도 각각 2원씩 의연금을 냈다.

그 당시 일반인들은 10전~20전을 의연한 기록과 비교하면 크게 기부한 셈이다. 110년 전 애국 활동을 잊지 말고 영원히 기리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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