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깊이 생각함’은 지혜를 일으켜 세워준다
칼럼-‘깊이 생각함’은 지혜를 일으켜 세워준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21 18:07
  • 1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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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깊이 생각함’은 지혜를 일으켜 세워준다


여름내 내 빈둥거리며 풀만 뜯고 번지르르 살찐 송아지 팔자를 부러워하는 게으름뱅이는 전망이 없다. 우리는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해야 한다. 나보다 앞서간 사람은 사심 없이 공경하고 나보다 뒤처진 사람은 정성껏 도움 주며 살아가자. 기상과 동시에는 오늘도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취침 전에는 차분한 명상을 통하여 하루를 깊이 반성한 후 숙면에 들어가야 한다. ‘차분한 마음’은 선정과 연결되고, ‘깊이 생각함’은 지혜를 일으켜 세워준다.

명상의 ‘명(暝)’은 ‘어둡고 깊다. 고요하다’이며 ‘상(想)’은 ‘생각하다’의 뜻이다.

명상을 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나온다.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에 쌓인 나쁜 습관들을 하나씩 걷어낼 때 서로 공존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혁혁한 불빛이 섬광처럼 번쩍이도록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가자. 방안이 깨끗해 보여도 창문 틈으로 햇살이 들어오면 많은 양의 미세먼지가 떠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내 마음도 깨끗하고, 고요하며 텅 빈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수많은 차별 심과 망상심이 생멸하고 있다. 수시로 명상에 잠겨서 마음속 미세먼지를 가라앉혀 나가자.

사람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어서 외부로부터 반복적으로 배우면서 삶의 자세를 고처 가야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사람마음이다.

화장실 낙서에서도 배울 건 배워나가야 한다. 배움 속에 사는 사람은 수시로 바뀌기에 어제의 관념이나 판단으로 그 사람의 오늘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겉보다는 속이 중요하다.

겉만 화려하게 유명메이커 옷을 입고 다닌다하여 인품이 고상해 지는 것은 아니다.

수행자들 몸에는 누더기를 걸쳐놔도 속마음이 맑고, 밝음으로 분위기가 정중하다.

덩치 큰 코끼리에게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생쥐가 제일 무서운 적이다. 나약한 사람이라고 깔보지 말자. 어떤 사람을 알고자하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안다.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들어내 보며 겸손하게 살아가자. 필자는 지난날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럴 때는 절필을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쓰게 된다.

오늘 쓴 이 글도 훗날 읽어보면 후회할게 분명하지만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서 오늘 다시 더 정성들여 쓰는 것이다. 글속에는 글쓴이의 인격이 담겨있음으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고, 의미와 표현까지 잘 갖추어져서 완벽하게 쓰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생에 완벽은 없다. 사람은 살면서 음식과 말과 글, 이세가지를 줄여야한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쓴 글이 새로워지기를 바라며 표현이나, 내용에 잘못이 없고, 앞뒤가 맞게 써서 읽는 이의 마음을 살찌우고, 인생의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쓰게 된다. 콧구멍 아래 뚫린 구멍, 그것을 잘못 놀리면 큰 화를 입게 되고, 활자는 영원히 남는 것이어서 신중을 기해가면서 수시로 깊은 명상 속에 들어가 자신을 점검하고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다. 마음이 삐뚤어져 있으면 본래 마음을 잃어 허둥대게 된다.

고독과 고통을 두려워 말고, 고요한 명상 속에 정신을 집중하여 묘한 이치를 체험하면서 고해의 바다를 지혜의 배로써 건너가자. 사람에게서 정신이 흐려지면 짐승이 된다.

술에 취해 길가에 쓸어져 잠든 사람은 이미 아무것도 판단 못 하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육체를 기준하여 평가하지 말고, 정신을 보고 평가하여야한다.

우리는 배우면서 살아가야하고, 배움은 서서히 깊고, 넓게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많이 배웠다고 상대를 무시하지 말라. 타성과 틀에 박혀 산다면 이미 죽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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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스 2017-03-23 10:18:00
배려심이란 말은 없습니다. 배려심은 '배려'의 잘못된 사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