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서부지역의 3·1운동사
진주성-경남 서부지역의 3·1운동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22 18: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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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경남 서부지역의 3·1운동사


경남지역 3·1운동을 지도하다 현장에서 순국한 숫자가 80여 명이다. 3월 10일 새벽에 도청소재지 진주시내 도청, 군청일원에는 교유문(격문)이 나붙게 되자 일경은 초비상이 걸려 엄중한 경계와 조사가 진행되고 학생들을 귀향시키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서부경남 인사들은 서울의 고종황제 인산에 참여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휴대하고 귀향해 산청·함양·남해·하동·사천·고성 등지로 전달케 된다.

진주는 3월 18일 낮 12시 진주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5곳에서 동시에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게 된다. 3월 19일에는 기생, 걸인, 기독교계광림학교 악기가 동원되어 시위하다 일경에 검거됐다.

고성군 3·1운동은 진주 중안동 출신 이주현이 고성읍 인사들을 만나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지도했다.
남해군은 하동군 금남면 출신 정재운·이원태·이홍식·추홍순 등이 남해읍 장터로 진출해 먼저 시위를 전개하고 뒤이어 남해군 설천면민들이 4월 3일 4일 남해읍으로 진출해 시위했다.

하동군 적량면장 박치화는 3월 18일 하동장날 소금가마니위에 올라서서 시위를 주도했다. 하동 양보면과 사천 곤명면은 3월 13일 시위를 전개했다. 하동군 옥종면의 하일노 등이 5000여명의 군중을 지도하며 시위하고 옥고를 치렀다. 하동 고전면민들은 일신단 33인을 조직해 시위하다 옥고를 치렀다.

합천읍과 대양면은 김영기·김호수·강시만·추용만·심재기 등이 결사대를 조직해 경찰서를 습격하다 현장에서 4명이 순국했다.

합천군 가회면, 삼가면들도 시위하다 현장에서 10여 명이 순국하고 산청군 단성면도 3월 18.19일 시위하고 3월 21일 단성지서를 습격하다 현장에서 10여 명이 순국했다. 뒤이어 산청읍에서도 시위를 전개했다.
함양지역은 정순길·윤보현·정순귀 등이 1500여명을 모아 시위를 전개하고 안의읍은 임채상·정순완·전재식·김채호·최석룡 등이 시위를 주도했다.

합천군은 이원화·전하선·권채선 등이 시위를 지도했다. 합천군 묘산면은 윤씨들이 3월 22일 시위를 전개하다 현장순국 2명, 수십명이 옥고를 치렀다.

의령군은 구여순·최정학·강제형 등이 3월 14~16일 700여 명을 모아 시위를 전개하고 옥고를 치렀다.

사천은 사천초등학교 학생들이 3월 21일 축구 시합을 하다 교문을 벗어나 시위하고 삼천포초등학생들도 시위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3·1운동은 남녀노소, 종교불문,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천세가 아닌 만세를 외쳤는데 자주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선포한 의로운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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