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지금 다시 시작하는 미래의 나
도민칼럼-지금 다시 시작하는 미래의 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23 18: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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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

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지금 다시 시작하는 미래의 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경쟁 분위기의 학령기를 보낸 탓인지 유독 순위에 민감하고 그 안에 들지 않으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자책감도 든다. 신학기를 맞아 새로 담당한 학생들을 개인 면담하였다. 학생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죄송해요, 지난 학기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요’라고 한다. ‘뭐가 죄송해. 이제부터 하면 되는데’ 라는 말을 그들은 표면적인 위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우리 역시 순탄하게 언제나 선두를 유지하며 여기까지 온 게 아니어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실패는 오히려 내공을 만드는 바탕이 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도 순위에 들지 못하거나 심지어 2위만 해도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죄스러워 주어진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4위 밖의 순위에도 미소를 짓는 외국 선수들 표정과 참 대조되는 모습이다.

TV 프로그램 중 연예인들의 학적부를 공개하며 성적으로 학령기를 평가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머릿속에는 성적의 중요성이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겠다. 인생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시기의 학령기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어떤 ‘계기’를 통해 한 우물을 팠고 꾸준한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는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치면서 어떤 계기에 의해 변화된다. 그 계기는 책이나 환경 또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얼마나 지속성 있느냐는 또 지금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최근 사춘기를 갓 보낸 아이를 보며 지난 몇 년간의 고군분투가 무상함을 느낀다. 극심한 사춘기를 보내면서 자상하고 따뜻했던 아이가 대들 듯이 말을 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학교 성적이 좋을 리 없었고 공부는 대체 왜 하느냐고 반문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율하는 시간이 지나 아이가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어느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수업교재를 받아온 후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반항하느라 보냈던 과거의 시간에 대해 후회스럽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휴대폰을 폴더 폰으로 바꾸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부터가 훨씬 더 중요하고, 지금이 쌓여서 미래의 네가 만들어진다고 말해주었다.

매사에 불만만 가득 찼던 아이는 시선이 부드러워지면서 부모와의 대화에 공감을 표현하였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아이를 키워주고 담임선생님의 관심이 계기가 된 것이다. 심리적 갈등을 넘어 무엇인가에 매진하고 몰입해보는 경험은 결과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밑거름이다.

탑 3라는 숫자에 얽매이면 언제나 상대적 빈곤과 결핍을 느껴야 한다. 우리의 의식수준도 순위경쟁에서 벗어나 능력인정과 가능성을 봐줄 수 있는 너그러움으로 변환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100세 시대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격려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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