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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고마운 것들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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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5  18: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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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고마운 것들

아무래도 그동안 일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몸에 좀 탈이 나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을 하긴 했으나 탈이 난 부분이 아직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하던 신체의 일부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동안 내가 내 몸에 얼마나 큰 신세를 지고 있었는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따지고 보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느 한 부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사실 손가락 하나만 살짝 베어도 그게 다 아물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큰 불편을 느끼는가. 하물며 그게 눈이나 귀나 폐나 심장 같은 주요 기관이라면 오죽 하겠는가. 그런데도 평소에는 누구도 그 고마움을 잘 모른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몸을 함부로 다루기도 한다.
내가 입원했던 곳은 다인실이라 이웃에는 제법 중환자들도 여럿 있었다. 커튼 너머이지만 이웃 환자와 간병하는 보호자들의 대화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온다. 하루는 옆자리의 보호자가 앞자리의 보호자와 수다를 떠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들려왔다.

“나도 몇 년 전에 이런 환자신세였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멀쩡해졌어요. 아유, 그땐 정말 이대로 끝인가 싶었어요. 그걸 겪고 나니까, 내 몸 구석구석 장기 하나하나가 그렇게 고마운 거 있죠. 그래서 지금은 매일 내 몸에다 대고 기도를 해요. 감사 기도요. ‘심장아 고맙다, 정말 고생이 많다, 위장아 고맙다, 손아 고맙다, 발아 고맙다, 그렇게요. 그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요. 고마운 게 그렇게 많더라고요…” 아줌마들의 수다였지만, 내 처지가 처지다 보니 그 이야기가 마치 설교나 설법처럼 들려왔다. 그건 진리였다.

그 아줌마의 그 수다에는 어떤 깨달음이 녹아들어 있었다. 아파서 병원 신세를 져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가 멀쩡하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일터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혜택인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고마운 것들은 우리의 신체 장기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펼쳐진 자연, 삼라만상이 다 그렇다. 나는 연전에 《사물 속에서 철학찾기》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거기서 물이니 불이니 공기니 흙이니 그런 것에서부터 돌, 풀, 나무, 등등 온갖 사물들 속에 숨겨진 철학적 의미를 천착해 봤다. 당연한 듯 사소한 듯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실은 어마어마한 의미를 간직한 것임을 나는 여실히 확인했다. 물이나 공기를 비롯해 어떤 것들은 사람의 생명과도 직결돼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전체 우주가, 그 안의 삼라만상이 모조리 다 고마운 것들 투성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걸 잘 모른다. 잃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잃어보면 곧바로 그 가치를 알게 된다. 그것을 나는 철학적으로 ‘상실의 인식론’ 혹은 ‘결핍의 인식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잃기 전에 알면 상(上)이요, 잃고 나서 알면 그나마 중(中)이요 잃고서도 모르면 그건 하(下)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하에 해당하는 인간도 적지 않다. 나라를 잃고서도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부모를 잃고서도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친구를 잃고서도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요즘은 아름다운 자연과 하늘과 공기와 물을 잃고서도 그 소중함을 잘 모른다. 그들이 잃지 않고서도 잘 아는 건 오로지 돈과 권력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보다 백배 천배 더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는 가득하건만, 그 고마움에 대한 인식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 고마운 것들이 인간들에게 질려 아예 스스로 떠나버리진 않을까 그게 나는 좀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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