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비빔밥의 다양한 유래
칼럼-비빔밥의 다양한 유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15 18:3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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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비빔밥의 다양한 유래


우리의 먹거리 문화는 다른 문화에 비해 계층 간 교류가 활발했다. 다만 재료의 양적·질적 차이에 따라 전파 속도와 요리 방식 그리고 음식 형태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먹는 데 귀천이 없다’는 속담을 입증해주는 셈이다. 우리 전통 음식으로 꼽히는 비빔밥은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밥에 나물·고기·고명 등을 섞어 먹는 비빔밥은 맛과 영양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요리 방법이 간단해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우리나라 대표 음식이다. 비빔밥은 다른 음식에 비해 문헌상 역사가 짧지만, 그럼에도 유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특히 비빔밥의 유래는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빔밥은 일품요리로 골동반(汨董飯 또는 骨董飯)이라고도 한다. 이미 지어 놓은 밥에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서 비빈다는 뜻이다. 한말의 식품에 대한 조리법을 보면 ‘밥은 정갈하게 짓고, 고기는 재워서 볶으며, 어육으로 만든 재료는 부쳐서 쓴다…. 밥에는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과 기름 등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비빔밥 상에 오르는 장국은 잡탕국으로 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고급 재료를 쓰고 조리 과정도 간단치 않은 것으로 보아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 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간편하게 비벼먹는 방식 때문에 농부나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농사철이 되면 아낙네들이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식사를 위해 들밥을 이고 나갔는데, 이때 밥은 큰 그릇에 푸고 사람 수대로 바가지에 나물을 듬뿍 담아 고추장을 넣고 잘 비벼서 먹었다. 또한 섣달 그믐날 부엌 찬장에 남은 반찬과 찬밥은 해를 넘기면 부정이 탄다 하여 그날 밤 모두 먹었는데 밤참으로 함께 나누어먹던 이 풍습도 비빔밥과 연관 지어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제사나 산신제, 동제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가 끝난 늦은 밤에 음복(飮福)이라 하여 밥에다 나물 등 갖가지 반찬을 고루 섞어 나누어먹었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사람 수만큼 식기를 준비할 수 없었던 산신제나 동제가 끝난 후에 신인공식(神人共食)으로 그릇 하나에 음식을 모두 넣어 비벼 먹기도 했다.

그래서 비빔밥은 다양한 유래만큼이나 재미있는 일화도 전한다. 조선 시대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식도락가(食道樂家)가 있었다. 그는 부임한 날부터 진주 지역의 제삿밥을 구해 받칠 것을 명했다. 진주 지방 제삿밥이 별미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사 지내는 집을 찾아 제삿밥을 구하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령들은 잔꾀를 내어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그대로 만들어 비빔밥을 내놓았다. 그런데 관찰사는 음식을 먹어 보지도 않고 제삿밥이 아니라며 사령들에게 호통을 쳤다. 제삿밥에는 분향(焚香)한 향(香)내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차린 제삿밥을 ‘헛제사밥’이라고 불렀다. 이후 헛제사밥은 비빔밥을 뜻하는 이 지방의 고유한 먹거리가 되었고, 현재 진주와 안동에서는 헛제사밥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파는 지역 향토음식점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빔밥의 유래담에는 궁중, 양반가, 일반 민가, 농부 등 다양한 계층이 등장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다만 비빔밥에 관한 공식 기록이 19세기 말엽에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전까지는 비빔밥을 문자로 기록할 정도로 대중화되지 못했거나 상류층에서 주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즉, 일찍부터 발달한 농경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즐기던 비빔밥이 이후 상류층과 궁중에까지 전파되어 재료나 조리 방식이 고급화되고 이름을 얻으면서 문헌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혁신도시에 새로이 내려온 모 기관장에게 “진주에 오니 어떤 음식이 좋아요?” 하고 물었더니 혁신도시 근처 산속에서 성업 중인 “나물 넣고 비벼 먹는 헛제사밥이 참 좋아요!”라고 했다. 특히 WHO에서 세계 최고음식을 뽑았는데, 그게 바로 한국의 비빔밥이었다고 한다.

필자 또한 비빔밥을 참 좋아하는데 분명한 것은 제삿밥에는 분향 냄새가 나는데 헛제사밥에는 분향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감지하니 일찍이 조선 말기에 태어났더라면 관찰사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팔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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