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뻐꾸기와 한(恨)
칼럼-뻐꾸기와 한(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22 18: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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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뻐꾸기와 한(恨)


일반적으로 새가 우는 소리를 ‘지저귄다’라고 하고 종달새나 꾀꼬리는 ‘노래한다’라고도 하지만 뻐꾸기는 ‘운다’또는 ‘울부짖는다’라고 한다. 이러한 표현은 한(恨)을 품고 죽은 사람이 뻐꾸기가 된다는 속설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뻐꾸기를 통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영혼이 이승에서 한을 발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많은 영혼들을 달래준 수많은 뻐꾸기 이야기에는 한이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한은 ‘억울함·원통함·원망 등의 감정과 관련해서 맺힌 마음’이다. 이는 다분히 한국적인 슬픔의 정서인데 다른 민족에게는 ‘원(怨)’의 정서는 있어도 ‘한(恨)’에 부합하는 정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서양은 물론 우리와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고전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에도 ‘원’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을 뿐 한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과 ‘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민족의 ‘한’과 다른 민족의 ‘원’의 차이는 해소하는 방법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원’은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당한 것과 같거나 비슷한 방법으로 복수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복수를 하지 않거나 상황에 따라서 복수할 수 없어 제3의 방법으로 풀게 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웃에서 불행한 일을 당하면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하고 놀이마당이나 점술(占術) 행위를 통해 슬픔을 함께하며 한을 달랬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의식을 민간신앙 차원으로 승화시켰는데 여기에는 한바탕 축제를 벌여 한을 푸는 역설적 해소 방식은 물론,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속담·설화·민요 등을 통해 한을 녹여내는 방식도 있었다. 일종의 공연예술인 마당극과 판소리는 물론 문학과 음악, 심지어 놀이문화를 통해 에너지를 분출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의 목소리를 지닌 비유와 상징의 새였던 뻐꾸기는 이러한 우리 사회 분위기와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새였다.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뻐꾸기는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이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데 이 때문에 소리에 대한 표현이 각양각색이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사연들이 얽혀 전해 내려온다. 서양에서는 뻐꾸기가 ‘쿡쿠, 쿡쿠’라고 울면 여름이 온다고 믿었다.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인데 시간을 알려주는 벽시계에서 뻐꾸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뻐꾸기가 ‘확곡(穫穀), 확곡’운다고 표현했는데 여기에는 수확을 재촉하는 권농(勸農)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기와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가 비슷했기 때문에 뻐꾸기를 통해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풍요로운 결실을 염원한 것이다. 또한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비롯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슬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회한의 심경 등 다양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며 다양한 사연들도 전한다. 옛날 옛날에 뻐꾸기와 두견이가 함께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되었지만 해마다 봄이 오면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따라서 민가에서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에서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정서를 떠올리게 되었고, 음력 3월 첫 번째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생이별의 아픔을 겪는다는 속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둥지에 있는 다른 알을 모두 밀어내고 가짜 어미 새의 먹이를 독차지하며 기생충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뻐꾸기의 울음소리에서 비애와 자책이 느껴지기도 하고, 여기에 갖가지 사연과 내력이 가미되면서 뻐꾸기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인 한(恨)을 표현하는 새가 되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뻐꾸기로 환생하여 이승을 떠돌며 원통함을 호소한다는 이야기가 유독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뻐꾸기는 오래전부터 우리 문학 작품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며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새이기도 하다. 권농일(勸農日: 1984년부터 5월 넷째 화요일로 제정)의 계절이 되니 뒷산의 뻐꾸기 소리가 처량하게 들리기에 한 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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