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 골초들이여!
도민칼럼- 골초들이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22 18: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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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골초들이여!


녹음이 짙어가는 오월이다. 집안 마당에 의기양양하게 선 소나무에는 새순이 한 뼘씩이나 자라 작은 바람에도 송홧가루가 날린다. 텃밭에는 며칠 전 사다 옮긴 고추, 가지, 토마토 모종들이 겨우 사름을 하고도 계속된 가뭄으로 생기가 없더니 어제 내린 비로 활기가 넘친다. 또 담장에는 빨간 장미꽃이 매달리기 시작하였고 담장 안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영산홍이 한껏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푸르름과 꽃들로 산지사방을 장식한 오월은 정말 아름다운 계절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상쾌한 아침 바람을 씌며 마을 안 곳곳에 서 있는 감나무 아래 편안히 늘어져 있는 안길을 따라 회관 앞 쉼터로 나갔다. 회관 마당에는 이팝나무 서너 그루가 하얀 꽃송이를 탐스럽게 품고 서 있고, 쉼터 앞 커피자판기는 밤새 물을 끓이며 손님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쉼터 한가운데는 겨우내 불을 지펴 녹이선 난로가 그대로 버티고 있고, 그 주위에 낡은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엊저녁에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이곳은 주로 마을 청장년들이 농사일 틈틈이 모여 쉬는 곳이다.

아침에 나가보니 엊저녁에도 몇몇이 쉬었다간 흔적이 역력하다. 골초들이 버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농촌 지역인 우리 마을은 회관 등 공공장소를 제외하고는 마을 전체가 골초들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흡연구역(?)이다.

1980연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애연가들의 천국이었다. 다방이나 술집, 식당, 사무실, 버스터미널 등 어느 곳이나 담배 재떨이가 놓여있었고, 실내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아니 그때는 담배 피우는 것을 하나의 멋으로 알았다. 그리고 피우는 담배의 질에 따라 그 사람의 품격이 평가되기도 했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은 밀수로 들여온 양담배를 꼬나물고 폼을 잡으며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시까지만 해도 삼천리강산 모두가 흡연구역이었고, 성인으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는 형국이기도 했다.

필자가 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스무 살 되던 해 군(軍)에 입대하고서였다. 2월의 논산 훈련소는 몹시 추웠다. 훈련도 고되었고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바짝 긴장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는 훈련병을 포함한 모든 사병에게 일주일에 두 갑씩 화랑 담배가 보급되었다. 어릴 적 어른들이 피운 담배꽁초를 주워 몰래 피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기를 들었기고 얼마나 혼이 났던지 군에 가기 전까지는 담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고된 훈련 중 조교의 10분간 휴식이란 호령이 떨어지면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는 뻐끔 담배로 잠시나마 마음을 안정시켰고, 그 바쁜 중에도 틈만 나면 먼 남쪽 하늘을 쳐다보며 고향의 부모·형제들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화랑 담배로 달래곤 했다. 그러나 역시 담배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근무부대로 배치를 받고는 바로 담배를 끊었다.

그런데 아들 셋은 모두 담배를 피웠다. 둘째는 수년 전에 끊었으나 맏이와 막내는 아직도 피우고 있어 만날 때마다 몸에 해롭다며 담배 끊기를 당부하지만, 좀체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배 끊기를 그렇게 심하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정말 힘들 때마다 담배로 마음을 다스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네들이 담배를 배운 것이나 지금 끊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풍요 속에서도 정말 어렵게 산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한다고, 또 직장을 구하고 나면 과도한 업무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동정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가끔 담배가 우리 몸에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군에서 고된 훈련을 이겨내도록 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고, 제대 후 직장과 가정생활을 하는 동안 정말 힘든 일을 당하였을 때 담배가 특효의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고민이나 격한 마음일 때도 담배 몇 대를 연달아 피우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 침착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조모님과 종조모님, 두 분 모두 젊은 나이에 혼자되셨고, 그때부터 거의 100세의 나이가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그 독한 담배를 하루에도 수십 대씩 피우는 골초였지만 모두 건강하게 사셨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은 담배 골초들이 정말 어려운 시대다. 담뱃값이 올라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고, 또 웬만한 곳은 모두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지청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골초들이여!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더라도 본인의 건강을 위해 담배를 조금씩 줄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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