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진주성-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23 18: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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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가 처음 열린 1948년 5월 31일 이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건설된 1975년까지 국회는 임시 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청에서 한국전쟁으로 대전의 충남도청 대구의 문화극장 부산의 문화극장 등 전전해야 했다.

국회의사당 건설은 1959년 남산공원을 터로 하는 국제현상 설계공모가 진행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961년 군정으로 무산되었다가 여의도 개발과 함께 다시 추진됐다. 국회의사당은 당시 개발되고 있는 여의도 면적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평 부지 2만 4636평의 건물 면적 7년의 공사기간 135억원의 총공사비를 투자한 당시 최대의 국책 사업이었다. 1966년 국회의사당 건립위원회가 발족 장성한 장기계획서에 대비 융통성과 신축성 공간구성 및 품위있는 표현 현대 재료와 공법 시공 한국문화의 전통과 특수성 반영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1975년 국회의사당은 지하2층 지상6층 규모로 완공되었고 6층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24개 기둥과 푸른 돔이 특징적이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24개의 기둥은 경회루의 석주를 본딴 것이며 24절기를 상징한다. 동시에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중앙의 거대한 돔은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모아 반영하는 의회기능을 상징한다. 기둥에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 돔에는 의견 수렴이라는 의미가 국회의 위엄과 권위다. 300석과 100석 규모의 회의장을 각추고 있으며 의회제도가 양원제로 바뀌더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민의원용과 참의원용으로 계획 되었다. 반원형의 회의장은 국회의원은 정원이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이동식 의석으로 되어 있다.

현재 본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민의원 회의장은 최대 400석까지 확장 가능하다 회의장 외에도 260여개의 의원 활동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돔 아래 의사당 내부에는 로비인 중앙홀(로턴다 홀)이 있다. 중앙홀의 대리석 바닥과 발코니의 난간에는 신라시대 기와문양 석굴암 천장 무늬 근정전 창호의 꽃살무늬 등이 현대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청 보다 크고 높도록 한층 더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예산 증액이 없었기에 의사당은 높아지는 대신 바닥 면적이 줄었다. 다시 돔의 크기도 두배가량 높이게 되었다. 24개의 기둥이 국민의 의견을 상징한다는 뜻이 있다.

의사당 설계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은 자신의 작품집에서 의사당을 빼고 싶어 했다. 완공이후 40여년이 지났다. 국회의사당은 언젠가 국가에 명물이 되고 언제나 민주주의의 상징물이 되는 권위만이 아닌 더 나은 가치와 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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