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슬그미 사라진 것들
아침을열며-슬그미 사라진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23 18:22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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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슬그미 사라진 것들


슬그머니 사라진 것들을 챙겨봐야겠다. 감꽃목걸이! 내 어린날에는 더러더러 감꽃목걸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얼마나 부럽든지. 감나무가 있어야 감꽃이 떨어지고 주울 수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어머니가 박을 타서 만든 바가지에 하나 가득 주워서 목걸이를 만들 수가 있는데 우리집엔 그 흔한 감나무도 변변한 게 없었다. 감꽃목걸이는 고염나무 꽃으로 만든 것이 제일 예쁘고 꽃이 달다. 고염나무 꽃은 항아리 모양을 한 작고 노랗다. 우리집에 없는 감나무를 찾아 그것이 많은 이웃집으로 새벽원정을 가곤 했다. 일찍 가야 많이 주울 수 있다.

우물과 두레박. 수돗물이 이렇게 보급되기 전에는 물을 양동이로 먹었다. 시골 생활의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물은 주로 부엌에서 사용하니 물을 이다 나르는 건 대부분 여자들의 몫이었다. 농사일을 하는 짬짬이 물을 이다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였으니 우리네 어머니들은 너나없이 슈퍼우먼이었다. 동네마다 우물이 있고 집집마다 두레박이 있었다. 어쩌다 잘못해 두레박을 우물에 빠뜨리는 수가 있다. 그러면 갈고리로 그걸 끌어올려야 한다. 어린 손에 두레박줄을 놓쳐 빠뜨리곤 울며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께 고하면 성가신 어머니는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외에도 사라진 건 너무 많다. 흑백티브이, 빨래판, 전동 타자기, 수동식 타자기(아, 이건 보고싶다), 트랜지스터, 재봉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돌리는 전화기…빨간 재봉틀은 옷감을 가지고 남의 집으로 전전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아버지가 선물한 물건이었다.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재봉틀만은 가장 예쁜 것이었다. 빨간 옷칠을 하고 자개를 놓은 참으로 예쁜 틀이었다.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팔순을 몇 년 전에 넘겼으니.

사라진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게 ‘부자가 천국을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 말은 기독교 성경에 수록된 것으로 생각할 때마다 통쾌하고 위로가 됐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모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결정적으로 천당에 갈 수 없으니 얼마나 통쾌한가. 악덕 부자이면 그럴수록 더 위로가 된다. 현실이 판판이 나를 갖고 놀며 괴롭혀도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서민이 부지기수다. 가난하지만 올바르게 살아서 죽은 후 극락이나 천당에라도 갈 요량으로 견디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얻은 천당가는 길에서 돈께나 있다고 남을 무시하고 거들먹거리던 악덕 부자가 옆에서 실실 쪼개며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딱 재수없지 않을까? 어어? 하는데 뭘봐, 부자 천당가는 거 첨봐? 어쩌구 지껄이면 아무리 천당이라도 안 가고 만다. 아니, 함께 쪼개며 같이 가??

그런데 그 말을 어느 사이엔가 좀체 들을 수 없다. 어렸을 때는 더러더러 들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는 교회당의 정문에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큰 글씨로 쓴 걸 오며 가며 볼 수 있었다. 왜 그 말이 사라졌을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목사나 장로 전도사들이 부자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여의도의 한 교회는 신문사까지 소유한 대 재벌이 됐다. 아비와 그 아들들이 신문사와 교회의 지분을 놓고 싸움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교회나 신문이 부자를 비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신도 중에 누군가가 ‘십일조’를 안 하면 ‘하나님 것을 도둑질한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 일주일에 걷히는 돈이 수억 수십억원이 된다나 만다나. 하도 그 말을 안 듣고 안 보다 보니 그 말이 정말로 성경책에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기독교인이 아니니 그것 보자고 성경책을 살 수도 없고. 암튼 아쉽다. 천당가기 불가능한 부자를 이렇게도 원하며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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