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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농민항쟁 유계춘 탄신 200주년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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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4  18: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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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농민항쟁 유계춘 탄신 200주년

조선 최초로 농민들이 앞장서서 권리투쟁을 전개할 때 이를 주도한 유계춘(柳繼春)지도자가 탄생한지 내년(2018년)이면 200주년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과 농민은 이 세상의 근본이다. 그렇지만 혹심한 가뭄과 기근, 홍수 그리고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로 농민들의 생활상은 고통이 연속되자 투쟁이 시작되었다.

유계춘(1818~1862)은 본래 진주시 수곡면 원당리 출신이다. 유계춘은 문화 유씨로 고려 재상 유경(柳璥)의 후손이다. 남명 선생의 제자의 한 사람인 조계 유종지(선조 때 정여립의 모반으로 옥사)의 9세손이다.

가난한 잔반이었던 유지덕의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친이 일찍 죽어 가계를 책임지게 되자 홀어머니 진양정씨 밑에서 어렵게 살았다.

유계춘이 35세 전후에 내평촌으로 이주하게 되자 혁명이 일어날 준비가 시작되었다고 할까?
조선 철종 때 탐관오리로 악명 높은 백낙신이 우병사로 진주로 부임하면서 농민들에 대하여 수탈을 자행하게 된다.

온갖 구실로 세금을 올리고 식량수탈이 극에 달하자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달로 높아졌다.

이를 시정해 달라는 탄원서도 무시되었고 소용없게 되자 마침내 농민 봉기가 시작되었다.

수곡도회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제사 때문에 일시적으로 석방되자 초군, 농민, 노비들이 1862년 2월 14일 일제히 투쟁이 전개되었다.

백낙신은 난리를 모면하기 위해 우병영 소속의 서리 김희순을 농민군 앞에서 처단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한 행위에 대하여 분개해 이방 권준범, 김윤수 등을 잡아 차례로 처단했다.
약 10일간 투쟁에서 탐관오리, 상인부호, 배신자, 토호세력 등 126호를 불태우고 곡물을 빼앗아 버린 집이 78호가 넘었다.

안핵사 박규수가 내려와 유계춘과 14명을 잡고 또 110여명을 체포했다.

<조선왕조실록>철종 13년 5월 23일조와 <승정원 일기>철종 13년 5월 23일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유계춘·김수만·이귀재가 수창자임에 확실하다. 이계열·박수익·정순계·곽관옥·유양택·최용득·안계손 등 7명이 창응하여 유계춘과 다름없다. 군민이 보는 앞에서 효수하라. 다만 죄가 의심스러우면 차율을 시행토록 하라’ 내년 200주년을 맞아 세미나 개최 등 기념사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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