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시콜콜한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거짓말,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거짓말, 사회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짓말… 다양한 성격의 거짓말들이 있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그 모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요즈음의 나는 매일같이 내내 거짓의 세상을 관람하며, 다소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월요일, 화요일의 여자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거짓말을 했다. 최고급 학벌로 위조하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파릇파릇한 나이로 위조했더니 세상은 그들의 사회에 그녀들을 편입시켜 주었다. 수요일, 목요일의 여자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주종관계에서는 얻을 자신이 없었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양 위장을 한 것이다. 천만 원이 넘는 옷을 입고 풀 메이크업과 가발 속에 자신을 숨겼더니, 사랑하는 이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토요일, 일요일엔 구질구질한 삶이 싫었던 남자를 본다. 진짜는 모두 버리고 만들어낸 가족, 만들어낸 이름으로 다른 이의 인생을 사는 남자다.
나란히 앉은 다른 면접자들에게만 질문을 한 뒤, 당신은 고졸이라서 합격할 수 없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면접관은 드라마 밖의 세상에서 흔히 볼 수는 없다.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지원자를 거를 수 있는 서류전형이라는 제도가 건재한 탓이다. 여자를 면접에 불러야 했던 이유는, 면접에서 반복하여 큰 수모를 당하는 것이 학력 위주의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그럼에도 성공하고 말겠다는 독기에 당위성을 불어넣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거짓말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그러나 실제, 이런 극적인 거짓말로 자신을 지탱하는 경우는 드물다. 저마다가 지켜야 할 현재가 있어 거짓말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연극에 쉬이 오를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과 음모가 주는 극적 긴장감은 드라마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자라고 부족한 이는 자신을 꾸며내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 남발하는 거짓말은 지켜보는 이들을 기운 빠지게 할 수 밖에 없다. 현실 속의 우리는 누구나가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가진 채 이를 메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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