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권하는 TV
거짓말 권하는 TV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1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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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SK에너지 사보

편집기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시콜콜한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거짓말,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거짓말, 사회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짓말… 다양한 성격의 거짓말들이 있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그 모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요즈음의 나는 매일같이 내내 거짓의 세상을 관람하며, 다소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월요일, 화요일의 여자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거짓말을 했다. 최고급 학벌로 위조하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파릇파릇한 나이로 위조했더니 세상은 그들의 사회에 그녀들을 편입시켜 주었다. 수요일, 목요일의 여자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주종관계에서는 얻을 자신이 없었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양 위장을 한 것이다. 천만 원이 넘는 옷을 입고 풀 메이크업과 가발 속에 자신을 숨겼더니, 사랑하는 이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토요일, 일요일엔 구질구질한 삶이 싫었던 남자를 본다. 진짜는 모두 버리고 만들어낸 가족, 만들어낸 이름으로 다른 이의 인생을 사는 남자다.

이들의 삶은 하나같이 녹록하지 않았다. 저마다의 아픔, 저마다의 실패, 저마다의 좌절로 얼룩진 이들의 인생은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절절하게 그려진다. 그네들의 사정은 공감이 가기도 하고, 동정이 일기도 하고, 때로 너무 불쌍해보여서 그만 외면해 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질퍽한 현실의 묘사로, 거짓말에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무리하고 작위적인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그만 피곤이 밀려오고 만다.

나란히 앉은 다른 면접자들에게만 질문을 한 뒤, 당신은 고졸이라서 합격할 수 없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면접관은 드라마 밖의 세상에서 흔히 볼 수는 없다.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지원자를 거를 수 있는 서류전형이라는 제도가 건재한 탓이다. 여자를 면접에 불러야 했던 이유는, 면접에서 반복하여 큰 수모를 당하는 것이 학력 위주의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그럼에도 성공하고 말겠다는 독기에 당위성을 불어넣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거짓말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그러나 실제, 이런 극적인 거짓말로 자신을 지탱하는 경우는 드물다. 저마다가 지켜야 할 현재가 있어 거짓말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연극에 쉬이 오를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과 음모가 주는 극적 긴장감은 드라마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자라고 부족한 이는 자신을 꾸며내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 남발하는 거짓말은 지켜보는 이들을 기운 빠지게 할 수 밖에 없다. 현실 속의 우리는 누구나가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가진 채 이를 메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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