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징검다리의 교훈
진주성-징검다리의 교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6.08 18: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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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징검다리의 교훈


꽤나 오래전에는 어디를 가나 징검다리가 더러 있었다. 마을 앞의 개울에도 있었고 계곡을 건너는 도랑에도 있었고 건너 마을 가는 시냇물에도 있었다. 그 시절엔 일상속의 통행길이였지만 이제는 추억 속에 묻혀버렸다.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도 있고 하여 눈에라도 띄면 점점이 놓인 징검다리 건너기를 좋아한다. 중심을 잡으려고 기우뚱대는 아슬아슬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징검다리를 조금만 지켜보고 있으면 오고가는 사람들의 자세나 표정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어 고맙기만 하다. 사랑방의 할아버지처럼 준엄하게 가르쳐주고 아랫목의 할머니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징검다리를 좋아하고 그래서 사랑한다.

양 편에서 마주서면 오고갈 순서를 가르쳐주는 것이 징검다리이고, 중간에서 마주치지 않게 차례도 일러주는 것도 징검다리이고, 무거운 짐을 이고 진 사람을 위해서는 양보하는 너그러움도 가르쳐주는 것이 징검다리이며, 타인의 안전을 위해 손을 내밀게 하는 배려의 미덕까지도 깨달게 하는 것이 징검다리이다. 어쩌다 물이 불거나 하여 중간쯤의 다릿돌이 잠겨져버린 위에 누군가가 작은 돌 하나를 얹어놓은 손길이 있어 고마움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엊그저께 쌍계사를 거쳐 불일폭포를 다녀왔다. 불일평전까지에는 계곡을 가로지른 징검다리가 두세 개가 있다. 가뭄으로 계곡물이 발라버렸다. 그래도 정겨워서 다리도 쉴 겸하여 한참을 지켜보았다. 기가 죽어서 풀썩 주저앉은 것만 같이 웅크리고 있었다. 발가벗은 알몸이 들어나서 일까, 동그랗게 등짝만 곧추세우고 고개를 숙였다. 제할 일이 없어서 풀이 죽은 것이다. 그냥 있기가 민망해서 일까, 웅크린 자세조차 어설프다. 야단맞고 쫓겨난 아이처럼 안쓰럽다. 콸콸거리는 물소리를 만들며 또랑또랑한 목청으로 신바람이 났어야 하는데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할 일이 없거나 없어져 버리면 저렇게 초라해져 버리는 것일까, 괜스레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이 자태조차 어줍다. 네 탓이든 내 탓이든 제할 일이 없으면 떳떳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또 한 번 일깨워 준다.

이제는 이 땅의 젊은이들 모두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떳떳해졌으면 좋겠다. 그럴 날이 하루속히 왔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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