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분단의 아픔
칼럼-분단의 아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6.12 18:4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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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분단의 아픔


하나의 공동체였다가 둘 이상으로 분단된 나라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데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나마 그렇게 해서 돌아갈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칫 그 분단이 영원히 고착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동안 박정희 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나 김일성 정권 이래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상대방을 ‘괴뢰 정권’이라 부르면서도 그 상대방으로 인하여 자기 정권 유지의 명분을 확보하는 버팀목의 기능을 나누어 가졌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남북관계다. 다변화하는 국제관계를 외면하고 폐쇄된 울타리 속에서 호전적 모험주의를 고수해 온 북한은 김일성 또는 김정일 사후에도 변한 것이 없다. 결국 우리는 정치·경제·사회·군사 등 여러 측면의 남북관계에 상대성의 원칙을 적용하고 배타적으로 국기(國基)를 지켜 나갈 수밖에 없다.

한 나라나 민족이 분단된 후 다시 원상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이 소멸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그 분단의 세월이 1백 년, 다시 말해 세 번의 세대를 넘어가는 것이다. 원래 한 나라였던 베네룩스 3국이 이제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 이에 대한 예증이 된다.

다른 하나는 분단된 두 공동체 국민의 평균 신장이 10센티미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는 두 체제 사이의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삶의 격차를 뜻한다. 그렇게 삶의 질이 달라지면, 통합 이후의 위화감을 예단하여 통합 그 자체에 대한 선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2010년 입대 기준은 키 137센티미터 이상이었는데, 한국군의 입대 면제는 145센티미터 이하이다. 거기다 158센티미터 이하는 공익 근무로 분류된다. 이 수치의 비교는 남북 간의 청소년이 영양 공급을 비롯한 성장 과정상의 여러 부문에서 매우 심각한 차별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분단시대의 고착을 풀어낼 방법론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우선은 그 원인행위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숙고해야 하고, 거기에 정권적 차원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접근할 길을 탐색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이 가졌던 새로운 의욕과 시도는 남북관계를 전환하는 의미 있는 물꼬를 트고 여러 방면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러나 그 바탕에 민족 전체의 행로보다 당시 정권의 눈높이에 맞는 대목이 잠복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웠으며,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는 남북 관계의 보편적 질서를 지키려는 의도가 좋았으나 다만 그 상호주의가 고착적이기 보다는 탄력적이어야 했으며 결국 그다음 정권들은 이를 계승하지 않았다. 양 체제 간의 화해가 제스처에 지나지 않고 한 시기의 협력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을 만큼, 남북관계의 기류는 변화와 변덕이 심하다. 그래서 한국의 역대 정부들도 그 정부 내부에서의 일관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북한의 권력체제가 변모하여 3대 세습까지 이른 지금, 남북 교류에 있어서의 온전한 방향성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효율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그동안 우리와 같이 분단국가로 있던 독일과 베트남의 경우 통일을 이루었고, 중국은 겨우 대만과 양안관계의 벽을 무너뜨렸다. 예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남북관계처럼 폐쇄되어 있지는 않았다. 타의에 의해 서로 분산된 가족이 생사소식을 알 수 있는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하는 것이 남북 이산가족의 실상이다. 봉함편지가 아니라 공개된 엽서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반도 분단의 비극은, 그야말로 금세기에 가장 끝까지 남은 반인권적 사건이요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해당한다.

이산가족 문제는 촌각을 다투는 시한성에 걸려있다. 금방 돌아올 것으로 여기고 정든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떠나온 월남 1세대들은, 이제 그 숫자에 있어서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월남 당시 500만을 상회하고 이들이 북한에 그만큼의 가족을 남겨 두고 왔기 때문에, 도합 1천만의 이산가족으로 불리었던 것이다. 무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많던 이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세상을 떠나고, 남아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쩌다 복권 당첨처럼 주어지는 가족재회의 기회를 허망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아픔을 언제까지 가지고 가야 할꼬!…6월이 시작되니 또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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