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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만고충신 성삼문 탄생 600주년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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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4  18: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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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만고충신 성삼문 탄생 600주년

성삼문(成三問)은 단종대왕의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사육신(死六臣)으로 조선의 대표적인 절신(節臣)이다.

세종 17년(서기 1435년)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 식년시에 하위지와 함께 등재하고 집현전 학사로 뽑혀 수찬을 역임했는데 이 때 세종대왕이 정음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정인지·신숙주·박팽년·최항·이개 등과 협력하고 공을 세운 인물이다. 성삼문(1418~1456)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부친은 도총관 성승(成勝)이며 외가인 홍주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늘에서 묻는 소리가 세 번 들려서 삼문이라 지었다고 전해 온다.

1442년 박팽년·신숙주·하위지·이석형 등과 함께 삼각산 진관사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왕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독>을 편찬했다. 요동에 와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을 13차례 찾아가 음운을 배우고 명나라 사신을 따라가 음운을 배워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큰 공적을 쌓았다. 이 때 박팽년·성삼문 등 36명은 직숙(直宿)의 공적으로 정난공신이 되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국새를 옮기자 서로 말하기를 주상이 아직 계시니 장차 복위를 도모하자고 다짐했다.

1456년 6월 수양대군이 단종대왕과 함께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위한 향응을 베풀 때 거사키로 했으나 한명회가 오늘은 운검(雲劍)을 금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실시되지 못했고 곧 발각될 것을 염려한 김질의 고변으로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성삼문은 군기감 앞에서 능지처참되고 부친. 형제들. 아들 3명이 모두 처단되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아내 차산과 운성부원군가에 시집간 딸은 관비(官婢)가 되고 손녀가 살아남았으나 가산(家産)을 몰수당하였다.

약 3백년이 지난 1758년(영조34)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고 충문(忠文)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서울 노량진에 사육신 묘가 있고 곳곳에 기리는 건조물이 세워져 있고 저서는 <매죽헌집>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원문상으로 216회 기록되었고 직계손이 없어 성교운의 아들 성주영을 봉사신(奉祀臣)으로 삼고 정문(旌門)을 내리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육신중에도 가장 으뜸되는 만고충신(萬古忠臣)이다.
2018년은 충문공 성삼문 충신의 탄신 6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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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
성삼문 선생의 충신 마음늘 본받을 내용이다.
(2017-06-16 07:14:14)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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