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지리산향기37-어느 집안 이야기?
도민칼럼-지리산향기37-어느 집안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6.21 18: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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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어느 집안 이야기?


능력이 없는 아버지가 있었다. 자식이 다섯인데 윗집에서 그럭저럭 품을 팔고 살다가 윗집도 형편이 어려워지자 개천 건너 아랫집에 품을 팔러 갔다. 윗집 아저씨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긴 해도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개천 건너 아랫집 아저씨는 매우 교묘하고 약삭빠른 사람이어서 정당한 품삯을 안주면서도 생색을 내기 일쑤고 거저 부려먹을 속셈으로 아이들에게 우리집 자식이 되면 먹여주고 입혀주겠다고 꼬드겼다. 한 아들은 속도 없이 ‘아버지 아버지’ 하며 따르더니 급기야 성도 바꿨다. 성을 바꾸지 않은 자식들에게는 매우 혹독하게 야단을 치고 품삯도 잘 안쳐주고 걸핏하면 매질을 했다. 그러더니 그집 막내딸에게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집안을 위해서 니가 희생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여서 데리고 가더니 자기네 일꾼들 노리개로 써먹었다. 늘 자식들이 매질을 당하고 탄광 막장으로, 섬으로, 끌려가 일을 하고 막내딸은 술집에 팔려서 온갖 치욕을 다 당하고 소식이 없자, 집안이 뒤숭숭했다.

못된 아랫집은 이집 자식들을 거저 부리고 여기저기 뺏은 것으로 곳간이 두둑해지자 바다 건너 부잣집하고도 시비를 벌였다. 자기들끼리 박이 터지게 싸우더니 급기야 부잣집에서 큰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그 사이 아들들은 난리를 피해 돌아왔다.

이제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좀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고 자식들이 철이 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첫째랑 둘째가 싸움이 붙었다. 능력 없는 아버지 대신 자기가 집안 가장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첫째는 윗집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고 둘째는 바다 건너 부잣집하고 어찌 잘 사귀어 두 사람 다 든든한 배경을 두었다고 생각했는지 싸움이 장난 아니었다. 허구헌날 살림이 박살나고 나머지 동생들은 그 싸움에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집안이 개판으로 변하더니 결국 어느 날 첫째와 둘째가 칼을 들고 설치다 둘 다 찌르고 찔려 죽고 말았다. 집안에 가장이 뭐라고 형제끼리 저 난리를 치나 싶지만 실상 그 집안을 마음대로 부리고 싶었던 윗집 남자와 바다 건너 부잣집 남자가 이집 아들들을 부추겼던 것이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형제가 그 어려운 시기를 거쳐 온 혈육의 정으로 우애를 가졌었어야 했는데, 나름 집안도 뼈대가 있어 짱짱했는데, 술꾼 아버지한테 배운 게 없었는지 한순간에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어찌 집안을 수습하는 사이 집안에 말뚝을 박는 희한한 광경이 생기고 말았다. 두 형이 죽고 싸움을 말린다는 핑계로 윗집과 부잣집이 내심 옆에서 각각의 편을 든 다른 형제들에게 그러라고 시킨 것이다. 셋째는 윗집편이 되고 넷째는 부잣집편이 되어 말뚝 밑에 함정도 파고 똥물도 채워 야무지게 경계를 만들었다. 그러니 딱 붙어있는데도 왕래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장가들도 가서 각자 식솔을 꾸렸지만 서로 고개를 돌리니 남보다 못했다. 거리에서 보면 자기 사촌인지도 못 알아보다가 말투를 듣고는 알았지만 서로 질색하며 피했다.
각자 자기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동네에 자랑질만 열심히 해댔다. 동네사람들은 그 앞에서는 편을 들어주는 척 했지만 돌아서면 다 손가락질을 했다. 다른 어떤 집도 그렇게 싸우고 그 집은 시멘트를 얻어다 장벽까지 쳤지만 서로 화해하여 벽을 허물었다면서 동네에서 형제간까리 저리 지내는 집은 저 집 밖에 없다며 배울 거 없으니 놀라가지 말라고들 했다.

세월이 흘러 셋째는 다음에 싸우면 안진다고 무기만 잔뜩 사들이고 넷째는 부잣집에 품을 팔아 부잣집이 하라는 대로 무기도 사고 부잣집 것도 빌려 놓고 든든하다고 했지만 언제 가져갈지 모르니 늘 부잣집 눈치를 보기 바빴다. 난리 통에 연락이 없던 막내여동생은 사실 그 전에 집에 와 있었다. 하지만 동네 창피하다고 조용히 숨겨두었다. 그러다 여동생이 집밖을 돌아다니자 아랫집에 같이 가서 한바탕 난리를 치자고 어르고 달래기만 했다 사실 넷째가 집수리를 하면서 아랫집에 돈을 좀 얻어다 쓰다 보니 대놓고 난리를 칠 형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부자끼리는 통한다고 아랫집과 부잣집은 서로 싸우기는 했어도 언제 그랬느냐 싶게 엄청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요즘은 부잣집에서 셋째네 무기 때문에 넷째네도 어디 놓기도 마땅찮은 무기를 사가라고 난리를 치는 모양인데 부잣집 강매보다 무서운 건 손자들이 꼭 사와야 한다면서 행여 부잣집 눈 밖에 나면 어찌 하냐고 더 난리를 친단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할 때 ‘아버지 아버지’ 하며 성도 바꾼 둘째가 생각이 난다. 그 둘째 결국 칼에 질려 죽었는데 형제간에 왜 그랬을까? 어느 집안인지 참 한심하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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