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 국보 승격 가시화
밀양 영남루 국보 승격 가시화
  • 장금성기자
  • 승인 2017.06.25 18:24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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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보 승격 최종 후보로 선정

문화재위원회 현지조사후 지정여부 결론


▲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전경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으로 칭송받으며 수려한 곡선미와 건축미를 뽐내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의 국보 승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밀양시가 영남루의 국보 승격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가운데 문화재청이 영남루를 국보 승격 최종 후보로 선정한데 따른 것이다.

25일 밀양시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밀양 영남루가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완주 화암사 우화루,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등과 함께 문화재위원회의 국보 승격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것. 문화재청은 지난해 대한불교조계종,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지자체로부터 국보로 지정할 만한 건축문화재를 추천받은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후보 4건을 추렸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2014년에도 영남루의 국보 지정을 심의했으나 부결된 바 있다.

영남루의 국보 지정은 문화재위원회가 전문가 3인 이상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참고해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영남루는 신라시대부터 유래, 본루 좌우에 부속 익루와 층층각을 거느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누정건축으로 서울의 숭례문과 함께 1933년 보물,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62년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물 제147호로 지정됐다.

영남루는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누각으로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名樓)로 일컬어 왔다. 신라 경덕왕(742~765)때 신라시대의 이름난 사찰 중의 하나였던 영남사(嶺南寺)의 부속 누각으로 창건됐다.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고려 고종 28년, 1241)와 숭례문(태조 7년, 1398)보다 훨씬 앞서 지은 전통 누각으로 그 역사성과 수려한 경관은 가히 일품이다.

고려 공민왕(1365년)때 밀양부사 김주(金湊)가 지금처럼 규모가 큰 누각으로 개창(改創)한 후에도 임진왜란 등의 전란과 화재로 인해 여러 차례에 걸쳐 소실과 중건을 거듭해 왔다. 현재의 영남루는 1834년(순조 34)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44년(현종 10)에 부사 이인재 (李寅在)가 중건한 것이다.

밀양강변의 높다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 영남루는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후기 밀양부의 객사(客舍)인 밀주관(密州館)에 부속되었으며. 영남루와 주변의 산수경관이 수려하여 1931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16경(景)을 정할 때 그 중의 하나로 선정됐다.

영남루의 본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큰 규모로, 넓고 높은 기둥을 사용한 누각으로 높고 큰 웅장한 기품이 특징이다. 영남루는 가운데 있는 본루를 기점으로 좌측에 능파각, 우측에 여수각과 침류각을 배치한 형태로 이같이 본루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익랑을 거느린 누각은 영남루가 유일하다.

이같은 영남루의 독특한 형태는 다른 누각에서 찾아 볼 수 없으며, 건물 배치와 형태에 보이는 창의적이고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영남루는 조선후기 누각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영남루의 이러한 문화재적 가치는 조선총독부에서 먼저 그 우수성을 알아 보고 사실상 국보급으로 대우를 했다. 장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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