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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5명의 정부포상을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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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8  18: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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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항일투사 5명의 정부포상을

필자는 귀성·희성들 가운데 훌륭한 항일투사들을 찾아 정부포상을 성사시켰다. 빈씨, 옹씨, 마씨, 팽씨, 화씨, 모씨, 아산 장씨, 어씨 기타 등이며 우리 추문도 포함된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강두석, 박덕실 여사, 박순복 여사, 정기헌, 김기완, 김홍권 선생 등의 명예회복을 위해 발로 뛰기로 했다.

또 지금까지 미포상중인 기생 산홍에 대해서도 정부포상을 추진 중이다.

박덕실, 박순복 여사는 진주 3·1운동 주역으로 활동하고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한규상(전 한일병원장)의 부인 또는 박성애 목사의 부인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자택에 혈성단을 조직하고 입옥한 동지들을 찾아 위문하고 사식을 제공하는 봉사를 하고 대한애국부인회 진주지회장으로 활동하다 1919년 12월 대구감옥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강두석 선생은 신간회 진주지회 간사 대표 후보 등으로 활동하고 진주농민조합을 결성해 활동 중 피체되어 대구감옥에서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하다 사천시 와룡산에서 별세했다.

정기헌 선생은 마산출신으로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고 1921년 워싱턴 태평양회의에 보내는 진정서에 창원군 대표로 서명했으며 장지연 선생의 장례식 때 제문을 지은 분이다.

김기완 선생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19년 3·1운동 때 아우 김기범(건국훈장 애족장 추서)과 함께 활동하고 하동농민조합장과 전국적인 단체인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임원으로 활동 중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홍권 선생은 1962년 공훈심사과정에서 정확한 자료 없이 심사하다 보니 가장 낮은 포상을 받았는데 부산 동래에서 산해관을 운영하며 군자금을 제공하고 중도일보 기자와 국장으로 근무 중 반일기사를 쓰고 해직되었고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국회에 해당)을 두 차례 역임한 공적과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때 이웃과 친·인척들과 활동한 공적이 추가로 발견되었으므로 재심사하고 훈장 등급을 올려야 마땅한 일이다.

정부는 발굴단을 만주, 중국으로 출장 보낼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활동한 분들을 제대로 찾아 명예회복을 먼저 실시하고 새 자료가 나오면 즉시 재심사하여 훈장등급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후손들이 인권위, 행정법원등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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