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낭중지추(囊中之錐)
세상사는 이야기-낭중지추(囊中之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6.28 18: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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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낭중지추(囊中之錐)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채 사진 한장이 관심을 끌었다.

조선중기 신흠 선생의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붓글씨와 매화의 조합이 절묘하다.

휴대전화 액정 속에서 매화 향이 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작품의 주인공은 필자보다 여섯 살 많은 오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개된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서울 말씨여서 조금 놀랐으나 형님 동생으로 지내기로 할 만큼 소통도 편했다.
지난 5월경, 주말 오후에 아담한 커피전문점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서울에서 음악 연주를 하며 생활하다가 15년 전에 가족 건강 문제로 처가인 거창으로 내려 왔단다. 10대 때부터 드럼 연주와 붓글씨를 써왔다는 설명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매주 금요일 저녁, 거창군청 앞에서 ‘농촌 소년소녀 가장 교복 후원’을 위한 자선 공연을 한다고 했다.

지난해 겨울 저녁에 길거리를 지나다가 음악소리에 끌려 지폐 한 장을 모금함에 넣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누군지도 몰랐는데 사회 관계망 서비스가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줬다. 한 분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고, 형님은 드럼을 연주 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한 지인이 “저 분은 유명 그룹사운드에서 연주한 실력파”라고 살짝 알려주고 갔다. 갑자기 사람이 달리 보였다.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왜 내게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바보 같은 질문에 형님은 고사성어로 답을 대신했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해 왔다. 조나라의 재상이었던 평원군이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게 됐다. 평원군은 자신의 집에 3000여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다. 20명의 대표단 중 19명은 선발했으나 마지막 한 명을 뽑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식객 중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 자원을 했다.

평원군이 “지혜와 재주가 있는 사람은 주머니에 든 송곳 같아서 언젠가는 뾰족한 끝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대는 그런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모수는 “소인은 아직 주머니에 들어간 본 적이 없는데 군의 주머니에 들어가면 그 끝이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재치 있는 말이 마음에 들었던 평원군은 모수를 대표단에 합류시켜 초나라로 갔다. 모수의 활약으로 구원병을 얻게 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형님의 말씀에 경솔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이야기 속에 ‘낭중지추(囊中之錐)’와 ‘모수자천(毛遂自薦)’의 고사성어가 나온다. 낭중지추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는 뜻이다. 모수자천은 ‘남이 알아주기 전에 스스로 추천한다’는 뜻이나 본래 어려운 일에 스스로 지원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에는 일의 앞뒤도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나선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직장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모두 다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인사 들이 어느 날 갑자기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한 사례가 많았다. 아무리 뛰어났더라도 스스로를 낮추지 못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얄팍한 지식과 재주만을 자랑하거나 함부로 나서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 이득만을 쫒아가는 사람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훌륭한 인재는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의 지조(志操)와 겸손(謙遜)을 갖춘 낭중지추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울림이 크다.

당신은 그런 눈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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