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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우리나라 보사소고(譜事小考)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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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18: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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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우리나라 보사소고(譜事小考)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근원없는 물이 없다. 뿌리가 있어 나무가 성장하고 지엽이 무성하듯이 사람도 뿌리(始祖)가 있다. 그러므로 족보는 일족의 혈통과 가계를 알고 동족의 단결과 보다 나은 활동을 추진하기 위한 값진 씨족의 보감(寶鑑)이다.

족보를 만든 목적은 종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그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동족내부의 질서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족보는 고려로 왕실의 계통을 기록하여 온데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고려 중엽 의종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족보를 체계화한 것은 조선 성종 초기때 일이고 따라서 특별한 가계 즉 왕족 이외는 보계를 기록으로 보전하여 왔다고 하는 말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족보는 중국의 육조(六朝)때부터 시작해 북송 대문장가인 삼소(三蘇)에 의하여 편찬된 족보는 우수하여 이를 표본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왕실에 세보가 있었을 뿐 사대부의 집에는 겨우 가승이 만들어 내려오다 조선 중종11년 병자년(1516)때 족보가 처음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파평윤씨의 대동초보는 중종34년에 인쇄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우리나라 사가(私家)에서는 시초로 보고 있다. 당시 양반의 자손이라야 벼슬길에 오를 수 있도록 제도상으로 규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선조의 현달(顯達)을 표현하기 위하여 족보를 만들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 종족의 역사이며 혈통을 실증하는 귀중한 문헌으로서 이는 동족의 여부와 소목의 서열 항열 및 촌수 분별이 지극히 필요하거니와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태어나서 고고의 소리를 외치는 때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태고의 선조때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족보는 문중사학으로 역사를 후손에게 전하므로 귀감이 되게 하며 더욱 필요하다 하겠다.

오늘날의 족보는 한글 족보의 등장이다 적서(嫡庶)의 구별을 하지 않은다. 관직과 직업 학력등과 출가한 딸 대신 사위 이름만 적던 것을 부인, 딸, 며느리 등 이름도 적는다. 출생, 사망 등 날짜를 서기로 적는다. 사진도 넣기도 한다. 책의 호연(号連)을 천자문의 순서로 하였으나 아라비아 숫자로 한다.

사대부 집안의 전유물처럼 되어왔던 족보를 한글 세대가 읽을 수 있고 찾아보기 쉽게 편집한다. 족보는 서문의 세덕편과 본문의 자손록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조를 알고 몇 세손인가를 확인 찾아 내려가면 된다. 그러나 족보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어 현대감각에 맞은 족보 편찬이 절실하다. 족보를 존귀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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