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노력과 운(Ⅱ)
칼럼-노력과 운(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7.10 18:4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노력과 운(Ⅱ)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해서 해외유학을 간 것은 노력이나, 결국 학업을 중단시킨 IMF 사태가 터진 것은 흉운(洶運:세상의 세찬 물결 운)이다. 얼굴도 모르는 처녀(총각)에게 장가(시집)들라는 부모의 명령에 순종한 것은 노력이나, 첫날밤 어여쁜 색시(잘생긴 신랑)의 얼굴을 확인한 것은 운이다. 절대로 복(福)이 아니다. 반대의 (밉고 못생긴) 경우도 평등하게 같은 횟수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듯한 용모와 제정신에다 성품까지 좋다면 대운(大運)이며, 반대의 경우는 대단한 불운(大凶)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모자란 부인을 얻은 퇴계 선생은 불운했다. 하지만 드높은 도(道)로 운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했다. 그래서 도를 닦아야 한다. 불운소화제로는 도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걸 도운(道運)이라고 한다.

비행기시간에 늦게 일어났지만 부랴부랴 준비해서 열심히 공항으로 나간 것은 노력이요, 그날따라 비행기가 지연출발을 해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은 것은 행운(幸運)이다. 행운(幸運)에서 대들보(-)를 하나 빼면 간당간당 위태로운 신운(辛運:매운 운)이다. 탑승 전 심한 배탈로 화장실에 가서 한참 차례를 기다린 끝에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기고 변기에 겨우 엉덩이를 올렸으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그만 비행기를 놓쳤는데, 그 비행기가 이륙 후 추락했다면 신운(辛運)이다. 이는 배탈이 아니라, 그 전날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현몽(現夢)하셔서 탑승을 막았다면 신운(神運: 귀신이 알려준 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6월 5일 밤에 미군 공수부대가 노르망디로 뛰어내린 것은 노력이었으나, 하필이면 그날 밤에 불이 난 농가가 밤하늘을 환하게 밝혀서 독일군에게 조준살해당한 것은 악천운(惡天運)이다. 그런데 교회첨탑에 낙하산이 걸려 살아난 존 스틸 이등병은 천운(天運)이다. K2 암벽등반 중 설사가 터지면,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바지를 벗고 급히 발사해야 한다. 등반장비와 줄로 얽힌 등산복을 낑낑대며 벗는 것은 노력이요, 그런 사람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줄에 매달린 채로 똥 벼락을 맞는 것은 비운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8000미터 이상의 14좌 완등(完登)에 빛나는 세계적인 등반가 엄홍길에게 일어났다고 한다. 뒤집어쓴 인분이 살을 에는 추위에 얼어붙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불운이다. 바람이 돌연 진로를 변경하고, 그 바람에 낙하하던 물똥이 얼굴을 향해 돌진하면 대단한 불운이다. 이를 설운(泄運: 설사 운)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기가(棋家)에서 말하기를, ‘대마가 죽는 것은 기적’이라고 한다. 살길이 무수했으나, 즉 한 번만이라도 살길을 택했으면 되는데, 수십 번의 살길을 놓치고 수십 번을 모두 죽을 길로 갔으니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는 말이다. ‘확률의 곱의 법칙’측면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전설적인 승려바둑기사 초대 본인방(本人坊) 산사(算砂:1559∼1623)가 죽음에 임박해 뱉은 명언이 있다. “이게 바둑이라면 패라도 걸어볼 텐데…”뿐만 아니라 운은 우리의 통제력 밖에 있으나 인과는 그렇지 않다. 인과는 법칙이므로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것과 같다. 스위치를 올리고 내림에 따라 어김없이 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처럼 인과도 그러하다. 운이건 불운이건 간에 우리에게 던져진 그 운과 ‧ 불운을 바라보고 포용하는 시각과 마음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그래서 구도와 해탈이 가능한 것이다.

극단적인 인과론은 ‘모든 것이 인과이고, 운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이 극단적인 인과론의 대척점(對蹠點)에는 극단적인 우연론이 있다. 즉 모든 일이 우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인과와 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인과론에 빠지면, 자신의 불행을 모두 전생의 업보로 돌리는 결정론 내지는 패배주의로 흐를 수 있다. 증시에서 깡통계좌에 근접하면 만회는 극도로 어려워지듯이, 큰 악업을 쌓은 사람은 인과의 힘만으로는, 즉 자력만으로는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절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인이나 귀인을, 즉 선지식이나 부처를 조우(遭遇)하는 것은 급등주처럼 대단한 행운이다. 그래서 운 이란 것이 어찌 보면 ‘선인이 망하고 악인이 성공하는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인관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주에, 운이 좀 섞이는 것이 우주를 부드럽게 돌아가게 만든다고 보아야 할 재미있음이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