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교육 Ⅱ
절망의 교육 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0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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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민들레공동체 대표
청소년 자살 소식은 이제 생소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한 해 약 200여명의 청소년들이 자살한다고 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절망의 한 지표이다. 청소년들의 셋 중 하나는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할 만큼 그들이 갖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다만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또한 학내 폭력은 더욱 잔인해지고 지능적이며 연령 또한 낮아지고 있다. 더욱 무서운 일은 가해자 학생들이 갖는 심층구조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인간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학생의 절망을 자신의 희망으로 삼은 악마적 현상이 일상화되어가는 것이다. 견디다 못해 학교를 뛰쳐나오는 학생이 한 해 8만 명가량이라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 모든 명백한 학교실패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학교가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기는커녕 학교는 이미 불행을 재생산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도 쓸모없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한때 학교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지만 이제 학교는 희망을 꿈꾸기에는 너무 지쳐버렸고, 희망을 꿈꾸는 자조차 불안한 그늘을 지나 두렵고 어두운 미래를 엿보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학교폭력은 학교에서 더 이상 희망을 꿈꿀 수 없을 때 일어나는 학생들의 저항이다. 본성에 맞게 성장해야 하고, 발육단계에 맞게 자연과 세상에 어울리게 교감해야 하는데, 소위 기성이 된 세대는 맞춤세대를 그냥 놔둘 수 없게 되었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소위 사리분별을 할 시기에 그 판단의 기저를 이루는 자발성은 오직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이 한 가지 판단 이외의 모든 것은 하위 가치가 되었고, 공부 잘하면 선이고 공부 못하면 악인, 이상하고 기괴한 인간성을 만들어 버렸다. 서울 강남에서 성업하는 두 업종이 학원이라는 사교육 집단과 소아정신과 병원이라는 점은 오늘 우리의 교육 현실이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 군상을 어릴 때부터 양상 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돈 많이 벌어야 행복할 수 있고 경쟁해서 일등 해야만 성공한 인생이라는 맹수의 정글법칙이 상존해 있다. 그 어떤 다른 희망과 가능성은 현실화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다. 새로운 상상력은 허락되지 않았고 성공과 실패라는 두 잣대 사이에 있는 인격성숙과 상호의존의 필요 역시 무시되어 왔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사람에게 이웃과 자연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을 평화롭고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학생들과 교사들이 과연 답을 얻을 때까지 치열하게 사색하고 공부할 여유가 있었는가. 희망을 구하기 전에 희망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만들 수 있을지 겸손하고도 빛나게 토론한번 한 적이 있었는가.

교내 폭력에 대해 사회 분위기는 엄중하다. 학교 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된다는 성토는 기본이고 당연히 가해 학생을 격리 조처하여 피해 학생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주장 또한 타당하다. 이제 교권이 더 이상 주도적으로 학생을 지도하지 못하게 된 형편에서 공권력이 학내에 투입되어야 할 평편이다. 학내 곳곳에 CCTV 설치는 기본이고 학생과 학생 간의 문제 해결에 교사보다 경찰이 우선권을 쥐어야 할 형국이다. 이미 학교는 자립적으로 인간관계를 푸는 공간이기를 포기한 셈이다.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선도하는 시급한 과제를 풀어가는 정책과 경험도 공유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그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정직하고 용기 있게 이야기할 때이다. 더 이상 우리 교육현장에 죽음과 절망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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