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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창성부원군 조민수(曺敏修) 순절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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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9  18: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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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창성부원군 조민수(曺敏修) 순절

고려 충신 조민수(曺敏修)장군은 고려 공민왕 경자년(1360)에 홍건적이 순주에 침입했을 때 순주부사로서 즉시 출동해 격퇴한 공적으로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오르고 동지밀직사사가 되었고 충근보리공신에 오를 정도로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우왕 때 1375년 경상도순문사로 있을 때 왜적이 김해로 쳐들어와 밀양까지 진출하자 조민수 장군이 즉시 격파해 공적을 세우자 이 승전 소식을 전해 들은 고려 왕이 의주마(衣酒馬)를 하사하며 크게 기뻐했다.

또 진주 청수역(지금 하동군 옥종면)에 침입한 왜적을 격파해 주민들을 안정시켰다.

우왕 7년(1381)에 지문하부사를 거쳐 서북면도체찰사에 제수되어 원나라 마지막 장수가 몰래 쳐들어오자 즉시 물리쳤다.

문하평리수시중을 거쳐 일인지하 만인지상 벼슬인 문하시중이 되니 1383년이다. 1385년 9월에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385년에 사은사로 대명외교를 실시하고 1388년에 요동정벌을 위해 좌군도통사가 되고 이성계는 우군도통사가 되어 출정했다가 회군하니 유명한 위화도회군이다.

조민수 장군은 최고위직 좌시중이 되고 이성계 장군은 우시중이 되었다.

이성계를 견제하기 위해 이색 선생과 함께 근비의 아들 창을 왕으로 추대했다.

창왕은 조민수 장군을 도통사로 임명하고 충근안사공신으로 삼았다.

공양왕 2년(1390년)새로운 세력을 막지 못하고 고향 창녕으로 내려와 있을 때 고려 왕조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새 왕조는 조민수 시중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고 그 가족까지 벌을 주게 된다.

조민수 시중의 묘소는 약 6백년간 방치되었다가 1962년에 방손 조병태 선생에 의해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 구룡산에서 발견해 2012년에 경남도 문화재 기념물 60호로 지정되었다.

조시중의 증손 사헌부 감찰 조연이 1433년에 세운 비석에 의해 경화택주청주한씨의 부장을 발견함으로서 비로소 유택을 봉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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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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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수 장군 후손
조민수 장군의 승리로 조씨 문중이 승리했다면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2017-07-21 00:14:26)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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